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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한국에도 번진 ‘미 투’ 운동 “타임즈 업”
입력 2018-02-10 08:30   

▲팝가수 케샤는 프로듀서 닥터 루크와의 소송으로 5년 간 활동을 쉬었다가 지난해 새 음반 '레인보우'를 발표했다(사진=소니뮤직)

팝가수 케샤는 지난달 열린 ‘제 6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신디 로퍼, 카밀라 카베요, 안드라 데이 등과 함께 무대에 올라 지난해 발매한 정규음반 수록곡 ‘프레잉(Praying)’을 불렀다. 이들 여성뮤지션들은 모두 흰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성폭력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착장이다. 케샤는 자신의 프로듀서인 닥터 루크로부터 성적·정신적 학대를 받았다며 그를 고소했다가 5년 간 활동하지 못한 바 있다.

“미 투(Me too).” 지난해 헐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이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담을 쏟아냈다. 이것은 곧바로 가시적인 움직임이 됐다. 미국 배우 알리사 멜리노가 “만약 당신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했다면 SNS 해시태그에 ‘미 투’라고 적어 달라”고 제안한 데에서 시작한 ‘미 투’ 운동은 그것의 규모를 통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경보음이 됐다.

한국에서도 ‘미 투’ 운동의 태동이 포착됐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검찰 고위 요직을 지낸 인사의 성추행 사실을 알린 뒤 벌어진 일이다. ‘미 투’ 운동의 여파는 각계로 퍼졌다.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 독립영화감독은 또 다른 영화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대법원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폭로했다. 그는 “‘피해자는 죄가 없다’는 말이 나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두들겼다”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

(출처='연애담' 스틸컷)

피해 여성이 지목한 감독은 영화 ‘연애담’을 만든 이현주 감독. 실명을 직접 공개하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은퇴 의사를 밝혔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고 이현주 감독을 제명하기로 의결했다. 여성영화인모임 역시 이현주 감독의 지난해 감독상 수상을 박탈했다. ‘연애담’의 배급사는 피해 여성에게 사과하며 “앞으로 해당 사건과 관련한 진행 과정에서 배급사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출시를 앞두고 있던 작품의 블루레이 역시 제작을 취소했다.

그리고 사건은 이현주 감독과 피해 여성이 함께 수학한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가 해당 사건 진상조사팀을 꾸리기에 이르렀다. 여성영화인모임과 임순례 영화감독, 영화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 등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곧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SNS 상을 달군 ‘OOO_내_성폭력(각계에서 벌어진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운동)’이 단지 ‘폭로’에만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모습이다.

헐리웃에서는 피해자의 연대를 강화한 ‘미 투’ 운동이 실질적인 변화를 지원하고 촉구하는 ‘타임즈 업’ 운동으로 이어졌다. 헐리웃 유명 인사들은 올해 초 뉴욕타임즈에 전면 광고를 게재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제 6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가수 자넬 모네는 케샤의 무대를 다음과 같은 말로 소개했다. “우리는 딸이고 아내이고 어머니, 자매이며 또한 인간입니다. 감히 우리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두 단어를 들려주고 싶군요. 타임즈 업.”

유명 연예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에게 검사가 “해당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았냐” “허리를 비틀면 성관계를 막을 수 있지 않냐”고 묻는 대한민국에서, ‘타임즈 업’은 별나라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는 천천히나마 다가오고 있다. 타임즈 업. 이제는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