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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시선] “판례는 바뀌니까요”...‘미스함무라비’, 치고받음의 미덕 알려준 드라마
입력 2018-07-17 13:38   

(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마지막회에 등장한 한 배심원은 판결이 늦어지자 “시간이 없으니 빨리 결정하자”고 다그친다. 그러자 또 다른 배심원이 이렇게 외쳤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계속 토론합시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 아니오.”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연출 곽정환, 극본 문유석, 제작 스튜디오앤뉴)가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집계결과 5.3%(전국)로, 자체 최고 시청률도 경신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남편을 찔러 죽인 사건을 판결하는 내용이었다. 참여재판으로 진행됐고, '아내가 잘못했다'는 쪽으로 반응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박차오름(고아라 분)은 증인에게 “부부싸움이 일어났던 것 같다고 하셨는데, 남편이 오랫동안 아내를 숨을 못 쉴 정도로 구타한 건 알고 계시나요?”라고 물었다. 이에 검사는 판사가 변호사 역을 하고 있다며 따졌지만, 한세상 부장은 "누군가 해야 할 질문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며 논란을 일축시켰다.

배석판사 박차오름과 임바른(김명수 분)이 아내를 무죄로 본다고 이야기 하자, 한세상(성동일 분) 부장판사는 “이런 유형의 살인사건의 정당방위를 인정한 예가 없다. 우리가 무죄를 선고해도 상급심에서 파기될 가능성이 높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박차오름과 임바른은 “과거야 어쨌든 판례는 새롭게 바뀐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비록 깨지더라도 새로운 의견이 올라가야한다. 비난이 일어난다면, 때론 그걸 감수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나. 우리는 단단해졌다”라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한 부장은 “눈이 부신다”며 그들을 응원한 후, 수석 부장 판사(안내상 분)에게 “우리는 과거고 그들은 미래다. 과거가 미래에게 양보하는 게 섭리 아니겠냐”며 뒤로 물러서 있기 위해 사표를 냈다.

‘미스 함무라비’는 ‘상식이 옳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한 드라마였다. 이들 말처럼 판례는 법률 해석의 기준을 제시해주지만,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판례’를 절대 기준으로 삼고, 그것이 잘못됐더라도 따르는 것을 ‘상식’으로 보았다. ‘미스 함무라비’는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후,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에게 반론을 제기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초반 ‘미스 함무라비’의 주인공 박차오름은 늘 별 거 아닌 일에도 화를 내는 듯 보였다. 이에 박차오름의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극 바깥의 시청자들조차 그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극중 성공충(차순배 분) 부장의 폭언과 과도한 업무로 유산을 한 홍은지(차수연 분) 판사 역시 성공충 부장을 고발하는 박차오름이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이로 인해 선후배로 이뤄진 판사 사회에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회에서 오히려 잘못을 공론화한 박차오름이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홍은지는 이것이 잘못됐음을 알고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고발했고, 다른 배석판사들 역시 자신들의 사례를 털어놓았다. 결국 법원이 ‘상식’과 ‘판례’가 만들었던 기존의 튼튼한 벽을 스스로 깬 것이었다.

마지막 회의 에필로그도 의미 깊었다. 에필로그에서는 학창시절의 박차오름과 임바른의 모습이 그려졌다. 도서관에서 자신의 자리를 뺏겨도, 과외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던 박차오름 대신 임바른이 나섰지만, 어른들은 “네가 얘 남자친구야? 가서 공부나 해”라며 무시했다. 그리고 마지막 신은 드디어 박차오름이 “아저씨, 여기 제 자리에요!”라고 자기 주장을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 됐다.

작가인 문유석 판사는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 남자친구가 아니어도 부당한 일을 당하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박차오름처럼, 임바른처럼 끼어들 수 있다고, 여기가 자신의 자리라고 말해도 된다고 강조하며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