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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칼럼] 정리 요정님의 방문을 요청합니다! '당신의 하우스 헬퍼'
입력 2018-07-19 09:09   

결혼 직후, 아내의 친척 오빠를 만났다. 5000만 국민의 최애 메뉴 치맥을 사이에 두고 아내가 투덜거렸다.

“와! 오빠는 결혼할 때 어떻게 했어? 집 정리는 해도 해도 끝이 없대?”

여동생의 하소연을 듣던 친척 오빠. 생맥주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켜더니 이렇게 말했다.

“10년을 정리해봐라. 집 정리가 끝나는지. 난 결혼한 지 20년이 됐는데도 아직 정리 중이야!”

이 한마디가 예언이 될 줄 나도 아내도 전혀 몰랐다.

신혼집을 정리하면서 결혼은 두 사람의 살림이 합쳐지는 과정이라는 ‘진실’을 실감했다. 그땐 둘 다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집 정리를 할 시간은 주말밖에 없었다. 그나마 우리 둘에게만 ‘온전하게’ 허락되는 주말도 드물었다. 약속을 쫓아다니거나 피곤에 절어 집 정리를 미루고 또 미루기 일쑤였다. 결혼 후 몇 주 동안은 채 풀지도 못한 이삿짐들을 구석에 미뤄놓고는 마치 섬처럼 만든 거실 한가운데에서 잠들었다.

살림이라고는 대단할 것도 없었는데도 그랬다. 남들 다하는 비슷한 혼수를 준비해 시작한 신혼이었다. 돌아보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물건은 책이었다. 둘 다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고 해야 할까. 만든 책, 본 책, 볼 책, 산 책, 받은 책, 참고할 책 등…. 책 많은 사람은 안다. 이 물건을 정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한 권, 한 권 손으로 분류하고 옮겨야 한다. 무겁기는 오죽하고. 지금까지 몇 번이고 집 안 물건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건만 책은 여전히 우리 집 공간의 대주주다.

책뿐일까. 무슨 집착이 발동했는지 우리 부부는 한 번 집에 들어온 물건들을 버리질 못했다. 차곡차곡 모으고 쌓기를 반복했다. 한 때는 내가 수집 취미가 발동해 맥주잔을 모으기도 했다. 호프집에 가서는 마음 좋은 주인을 설득해 맥주잔 한두 개 얻어오기를 즐겼다. 장을 보기 위해 들른 마트에서 수입맥주에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맥주잔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때만큼은 아내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듣는 내공을 발휘했다. 집에 물건이 들어온다고 공간이 그만큼 넓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면서도 정리는 외면하고 수집에만 열을 올렸다.

그렇다고 정리를 전혀 하지 않고 산 건 아니었다. 피곤에 지쳐 집에 들어온 날, 일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았던 어느 날, 아내와 다퉈 상처를 주고받았던 날. 바닥을 보였던 마음으로 둘러본 내 집은 처량했다. 마치 ‘왜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있나요?’라고 항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당장 모든 걸 정리하고 싶어지는 ‘정리의 스위치’가 반짝 켜졌다.

스위치가 켜지는 날엔 평일과 주말, 낮과 밤을 따지지 않고 정리하고, 버리고, 쓸고, 닦았다. 정리로 밤을 새기도 했고, 휴가를 내고 오로지 정리에 몰두하기도 했다. 문제는 스위치가 금방 꺼진다는 건데…, 결국 상황은 도돌이표 그리듯 제자리가 되고 말았다. 아내의 친척 오빠가 했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왜 우리 집 정리 상태는 결혼할 때쯤에서 반걸음 밖에 나가질 못한 걸까. 어떤 때는 집 정리의 방법론을 두고 아내와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했다. 마치 서로의 방이 어질러진 집의 숙주라도 된 것 마냥 당신 방부터 먼저 치워야 한다고 주장하다 생긴 일이다. “우리 외출했을 때 누가 와서 쓱싹쓱싹 치우고, 닦고, 정리해주면 좋겠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내가 내뱉은 말에 나 또한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맞다”라고 맞장구치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당신의 하우스 헬퍼'(KBS)의 주인공 지운(하석진 분)은 우리 부부 눈에는 요정이다. 정리의 요정이다. 청소는 기본, 빨래와 요리, 설거지까지 도맡아하는 일명 정리 컨설턴트다. 우렁총각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드라마는 지운을 중심으로 집을 정리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빠가 떠난 집에 살면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인턴사원 다영(보나 분), 잠시 자기 집을 맡기고 뉴욕으로 떠난 남자친구 연락만을 기다리며 그의 애완견과 함께 생활하는 상아(고원희 분),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고 있는 이웃집 할아버지 용건(윤주상 분) 등. 이들의 집은 하나같이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들이 정리하지 못하는 건 집이 아니라, 마음이다. 지운은 다영과 상아, 용건의 일상에 나타나 집 정리를 돕는다. 마음속 무언가를 정리하지 못하는 이는 지운도 마찬가지인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앞으로 전개될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

세상이 미니멀리즘으로 떠들썩할 때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식탁과 화장대를 친척에게 나눠주고, 몇 년간 서랍장과 장롱에 잠들어 있던 잡동사니와 옷을 정리해 중고장터에 나가 팔았다. 동시에 물건 구입에 더욱 신중해졌다. 조금 불편한 정도라면 물건 없이 살기로 했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아까워 않고 버렸다.(그 많던 맥주잔도 대부분 사라졌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결혼 10년차. 우리 집은 여전히 정리 중이다. 집 정리의 완성 단계가 과연 있을까. 나와 아내가 살고 있는 이상 앞으로도 물건은 어질러질 테고 집 안 곳곳에는 먼지가 쌓일게다. 그럴 때마다 정리의 스위치를 켤 수도 없는 법. 할 수만 있다면 정리 컨설턴트 지운을 현실로 소환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 짐작하건대 지금까지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10년, 아니 그 이상 정리는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