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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영화] 익명성으로 바라본 ‘마녀’ (with 김다미 최우식)
입력 2018-07-22 14:47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에서 구자윤(김다미 분)을 10년 만에 만난 귀공자(최우식 분)는 이렇게 말한다. “그새 이름이 생겼네?”

과거 시설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은 사고가 일어났고, 당시 홀로 탈출한 자윤은 기억을 잃은 채 노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밝게 성장한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자윤 앞에 의문의 인물이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숨겨져 있던 거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 아래 글에는 영화 ‘마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중간 이후 드러나는 진실에 따르면, 구자윤을 비롯해 귀공자, 미스터 최(박희순 분)는 닥터 백(조민수 분)의 실험을 통해 탄생한 인간이다. 닥터 백은 과거 ‘살인 병기’를 제작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었고, 그중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것이 구자윤이다.

‘실험쥐’인 인물들은 만들어진 기질 덕분에 ‘본능’이 앞선다. 하지만 자윤은 귀공자ㆍ미스터 백과 달리,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부분은 캐릭터의 이름 유무(有無)로 표현된다. ‘마녀’ 주요인물 중 주인공 구자윤만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귀공자가 구자윤에게 “그 이름이 번호보다 낫네”라고 말한 것처럼 과거 구자윤도 번호로 불렸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도망쳐 새로운 인생과 함께 이름을 갖게 됐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그 외 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대신 독특한 명칭으로 불린다. 구자윤을 만들어낸 박사는 ‘닥터 백’, 구자윤과 귀공자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윗세대 인물이면서 자윤을 쫓는데 혈안이 된 남자는 ‘미스터 최’, 구자윤과 같은 운명을 타고났지만 자윤과 달리 시설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년은 ‘귀공자’다.

닥터 백이나 미스터 최의 경우엔 극중 해당 호칭으로 불리기라도 하지만, 귀공자는 극중 불리지도 않는다. 엔딩크레딧에 적힌 ‘귀공자’라는 캐스트 소개 덕에 그의 호칭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만약 극중 불리는 신이 있었다면, 그는 실험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일련번호로 불렸을 터. 캐릭터성을 봤을 때 귀공자는 ‘귀한집 아들’ ‘고상한 남자’를 일컫는 ‘귀공자(貴公子)’다운 인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귀공자란 예쁜 이름을 붙여준 것이 흥미롭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최우식은 비즈엔터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해석했을 때, 반전인 것 같다. 내 캐릭터는 이름만 귀공자고 정말 불쌍한 아이이지 않나. 싸움도 자윤에게 밀리고 가족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쌍하다. 그래서 나는 귀공자를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귀공자가 ‘악역’ 롤을 가지고 있지만, 진짜 악역은 닥터 백이고, 나는 구자윤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캐릭터를 해석했다.

‘귀공자’라는 이름이 독특하기 때문에 배우에게도 해당 이름으로 소개되는 것이 민망하고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최우식은 촬영 당시 박훈정 감독에게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그가 새롭게 제안한 이름은 앤서니 버지스 작가가 쓴 소설이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연출한 ‘시계태엽 오렌지’ 주인공 이름에서 딴 ‘알렉스’였다. 알렉스는 악랄하지만 한편으론 순수해보이는 인물로, 악행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였다가 이후 정부의 실험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을 받는다.

최우식은 “어차피 극중엔 불리지 않고 엔딩크레딧만 바꾸면 되니까 감독님께 제안해보긴 했다. 미국에서 왔으니까 영어 이름이 괜찮겠다 싶었고 알렉스가 떠올랐다. 귀공자 캐릭터를 만들면서 ‘시계태엽 오렌지’의 알렉스를 많이 가져왔다. 내가 봤을 때 귀공자는 알렉스처럼 악의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 같았다. 자윤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고, ‘엄마’ 닥터 백 지시로 나쁜 짓을 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도 현장에선 나를 알렉스라고 몇 번 부르셨는데, 마지막 크레딧 보니까 귀공자라고 올라갔더라”라고 웃으며 비하인드를 털어놨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또한 타이틀인 ‘마녀’는 구자윤을 쫓는 인물들이 자윤을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김다미는 비즈엔터와 인터뷰에서 “마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존재지 않나. 그들이 한 사람을 마녀라고 부르면서 억압하고 탄압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마녀라는 존재를 만들어내고 어쩌면 자윤이 그렇게 길러졌다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자윤이 무서움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라고 이야기 했다.

이들의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귀공자와 구자윤의 마지막 대사에 정점이 찍힌다. 마지막쯤 가면 구자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폭주하는데,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이후 자신이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약을 찾는다. 이런 자윤을 보며 귀공자는 “이젠 의미 없지 않나. 넌 그렇게 살고 싶냐. 나라면 ‘구자윤’으로 죽었을 거다”라고 말한다. 구자윤은 그의 말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난 ‘구자윤’으로 계속 살 거야”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에필로그. 자윤의 아버지가 “네가 어떻게 태어났든 우린 그렇게 널 키우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하고, 자윤은 “다시 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평범한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다. 즉, ‘마녀’의 이름은 단순히 캐릭터를 구별 짓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물의 정체성과 함께 감독이 말하고자 한 의도를 담아낸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