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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3일, '섬티아고' 국내 최초의 섬 순례길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노두 길
입력 2020-02-21 15:54    수정 2020-02-21 16:16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다큐멘터리 3일'이 산티아고를 꿈꾸는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섬티아고'의 72시간을 담았다.

21일 방송되는 KBS1 '다큐멘터리 3일'은 국내 최초의 섬 순례길로 조성된 기점·소악도에 생긴 유쾌한 변화를 지켜봤다.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1004개의 섬이 있어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전라남도 신안군. 수많은 섬 가운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외딴 다섯 개의 섬이 있다. 바로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와 진섬, 딴섬이다. 다섯 개의 섬은 ‘노두 길’이라 불리는 징검다리로 이어져 하나가 되었다. 이 하나 된 섬을 일컬어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썰물 땐 하나의 섬처럼 오갈 수 있지만, 하루 두 번 밀물 때가 되면 노두 길이 잠겨 다시 다섯 개의 섬이 되어버리는 곳이다.

하나에서 다섯으로, 그리고 다섯에서 하나로. 이 마법 같은 풍경을 가능케 한 노두 길은 기점·소악도의 유일한 자랑거리다. 그만큼 외지 사람들을 불러올 만한 별다른 매력이 없어 여행객은커녕, 존재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 섬에 최근 기적 같은 변화가 생겼다. 섬 곳곳이 알록달록한 열두 개의 예배당으로 채워지고, 노두 길을 따라 걷는 순례길이 조성된 것이다. 국내 최초의 섬 순례길이자 한국의 산티아고, 이름하여 ‘섬티아고’다.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적막한 섬마을을 물들인 열두 개의 예배당

두 평 남짓의 각 예배당은 섬마을의 선착장, 언덕, 마을 어귀, 갈림길 등에서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진 채 12km의 순례길을 안내한다. 예배당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절대 특정 종교인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도처일 수도, 명상을 위한 곳일 수도, 쉼터일 수도 있다. 고독과 성찰, 치유 등 생각을 비우고 채워내려는 누구에게나 열린 ‘나만의 공간’이 된다.

국내·외 각각 여섯 명의 설치미술 작가가 참여한 예배당인 만큼 그 외관도 예사롭지 않다. 작가들은 유럽에서나 마주할 법한 외형에 절구통, 맷돌, 고목 등을 적용해 섬마을 주민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나타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양이와 염소, 양파와 물고기 등의 상징물을 통해 기점·소악도의 정체성을 투영하기도 했다.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특히 프랑스 설치미술 작가 장미셀과 파코, 브루노는 열두 개 예배당 중 세 개를 완성하느라 가장 늦게 기점·소악도를 떠나는 작가들이다. 소통도 원활하지 못하고 생필품도 부족했지만, 손짓과 발짓 그리고 마음으로 주민들과 진심을 주고받았다. 그 결과 호수에 떠 있는 예배당을 비롯해 벽면이 파도치는 예배당 등 섬이 살아나는 듯한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별 것 없던 섬에서 자랑하고 싶은 섬으로

마을 풍경 중 바뀐 건 예배당뿐만이 아니다. 뭍에서 오는 반가운 손님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민박집으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순례길 중도에는 마을 기업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생겼다. 순례길이 조성됨에 따라 마련된 전기자전거 대여소와 유일한 공용버스인 ‘1004버스’ 덕분에, 방문객들은 물론 노년층이 대부분인 주민들의 편의가 한층 높아졌다.

섬마을 주민들의 생활도 점차 바뀌었다. 농사와 바닷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농부들에게 추진위원장, 이사, 사장 등의 직책이 생겼고, 농사 이외의 수익 구조도 마련됐다. 모두 섬의 변화에 발맞춰 한마음 한뜻으로 출범한 ‘기점·소악도 마을협동조합’이 생긴 이후 달라진 모습들이다.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불편한 섬에서 찾은 충만한 삶

섬을 찾아온 건 관광객뿐만이 아니다. 우연히 여행으로 온 이곳에 반해 정착을 결심한 윤희찬 마을사무장은 도시에서 공무원직을 지내다 자신만의 삶을 찾아온 반가운 뭍사람이다. 지금은 기점·소악도 마을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요직을 담당하며 또 다른 뭍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1004버스의 자칭타칭 천사 김성귀 기사는 좀처럼 찾기 힘든 섬마을의 젊은이 중 하나다. 도시의 직장생활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위해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손님들과 주민들의 편리한 발이 되어주고 있다.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닌 진정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는 이들로 인해 기점·소악도는 따뜻함을 흠뻑 머금고 손님들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다큐3일' 신안 기점·소악도(사진제공=KBS1)
◆노두 길이 맺어준 섬, 그리고 인연

무엇보다 큰 변화는 그동안 구경할 수 없던 외지 손님들이 찾아와서 갖게 된 설렘이다. 행여 자녀들이 배 시간을 놓칠까, 명절이라도 구태여 불편한 섬으로 초대하지 않았던 마을 어른들은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버선발로 섬을 소개하고 차 한잔도 서슴없이 내어주고 있다.

오지남 할아버지는 자신의 밭 일부마저 선뜻 내었다. 그 땅에 세워진 예배당은 사별한 아내의 묘가 보이는 구조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요소가 곳곳에 베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같이 예배당을 쓸고 닦으며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달랜다. 예배당을 찾아온 순례자들은 그런 할아버지의 벗이 되었다. 혼자 하던 기도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더해져 할아버지를 더이상 외롭지 않게 했다.

손님들을 조금의 적대와 걱정 없이 온 마음으로 반기는 마을 주민들은 그렇게 섬에 찾아온 기적 같은 변화를 음미하고 있다. 주민 총 60여 명뿐이던 적막한 섬은 주민들에게 점차 ‘더 살고 싶은 섬’,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섬’, ‘자랑하고 싶은 섬’이 된 것이다.

바다로 둘러싸여 외로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섬이라지만 기점·소악도 주민들은 노두 길을 통해 그들만의 소통창구를 만들었다. 노두 길은 섬과 섬을 잇게 한 동시에 섬사람들 간 만남의 다리가 되었고, 마침내 순례길이 되어 섬 밖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통로가 되었다. 섬의 모습이 달라지기까지 설치미술 작가들과 관광객들이 있기 이전에,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려 했던 주민들의 의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