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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대기자의 '스타 메모리'] '아는 형님' 조용필과 해운대에서의 1박 2일②
입력 2022-03-06 12:01   

▲가수 조용필(이투데이DB)

①에서 계속

공항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에서 경찰들이 다가와 검문을 했다. 서울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던 기간이라 경비가 삼엄했다. 트렁크를 열어 보이고, 자동차 밑바닥에 폭발물 탐지기를 들이 밀었다. 창문도 내려 보라고 해서 열었더니, 경찰의 표정이 묘했다.

"혹시 조수석에 타신 분 얼굴 좀 들어보세요."

선글라스 차림에 모자까지 눌러쓴 용필이형이 얼굴을 살짝 들었다. 경찰은 "혹시 조용필 씨 아니냐"라고 했다. 우리는 "닮았다는 이야기 좀 듣는다"라고 답했다.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차를 통과시켰다. 설마 조용필이 낡은 포니 승용차를 타고 가겠느냐는 표정이었다.

부산 김해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예약된 해운대 호텔로 찾아 갔다. 호텔에 도착하니, 직원들 여러 명이 호텔 로비로 나와서 대대적으로 환영 인사를 했다. '이 사람들 너무 일을 크게 벌이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됐다.

우리 일행은 로비라운지에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올라가라는 직원들의 배려를 사양하고, 곧바로 예약된 꼭대기 층 프레지덴셜룸으로 올라갔다. "이런데서 잠이 오겠어요"라며 처음 경험해보는 룸의 구조와 인테리어에 일단 감탄했다.

그런데 시원한 오션뷰의 넓은 거실에는 덩그러니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용필이형의 눈길이 그리로 꽂혔다.

뮤지션은 뮤지션이었다. 용필이형은 냉큼 피아노앞에 앉아 즉석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우리가 부산에 온 사실 아무도 모르겠지"하고 익살맞게 웃었다.

▲가수 조용필(비즈엔터DB)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10분도 안되어 산산조각 났다. 룸의 전화통이 불이 나기 시작했다. 계속 벨이 울렸다. 내가 받았다. 전화만 받고 답을 하지 않자, "거기 조용필 씨 계시지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디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5분에 한 번씩 전화가 왔다. 모두 조용필을 찾는 전화였다. "그런 사람 없다. 잘못 전화하셨다"라고 계속 끊었다.

나는 참다못해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가 이방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전화가 계속 오는 거냐. 호텔 직원 중 누가 발설한 것 아니냐"라며 따졌다. 호텔 매니저는 맹세코 외부 사람에게 말한 적 없다고 했다.

수십 통의 전화가 오는 가운데 어떤 한사람은 "잘못 전화하셨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어도 계속 전화를 했다. 진한 부산 사투리로 "용필이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지금 전화 받는 당신은 대체 누구냐"라며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그는 "나 김xx 부장"이라고 밝혔다. 알고 보니 김×× 부장은 당시 영남 지역에서는 최고로 영향력 있는 라디오PD였다.

용필이 형은 "놀러 온 게 아니라, 조용히 인터뷰만 하고 돌아가려고 취재 기자와 함께 왔다"라며 부탁을 했지만 그로부터 30분도 안 돼서 갑자기 룸의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김×× 부장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

결국 김×× 부장과 우리 일행은 고급 철판요리집에서 식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계속 술을 권하는 김×× 부장을 겨우 돌려보낸 뒤 호텔로 돌아가서 “잘 쉬라”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누우면 금방 잠이 들것 같았는데, 파도 소리와 멋진 야경을 두고서, 잠이 잘 오질 않았다. 한 두 시간쯤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호텔의 P부장이었다. "저녁은 잘 드셨냐. 궁금해서 전화 드렸다"라며 "아직 이른 시간인데 벌써 주무시는 거냐. 해운대에 왔는데 싱싱한 회에 한잔 하셔야 되는 거 아니냐. 바닷가 횟집 중 잘 아는 곳이 있는데 꼭 모시고 가고 싶다"라고 했다.

▲가수 조용필(이투데이DB)

용필이 형과 A 선배의 룸에 전화를 하니, 두 분 다 피곤하다더니 그사이에 컨디션이 돌아와 흔쾌히 "좋다"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달맞이 고개를 넘어, 청사포라는 해변으로 갔다. 유명 횟집이었는데, 이날따라 한적했다. 처음에는 실내에서 먹다가, 해변에 깔아놓은 평상으로 옮겼다.

휘영청 떠 있는 달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 아까 김×× 부장과 마셨던 술은 에피타이저였고, 본격적인 술자리는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용필이형은 술자리에서 본인이 흥이 오르면, 가만 앉아 있지를 못하고 일어서서 액션을 취하면서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이때가 조용필 나이 불과 38세. 어린 시절 기타 하나 들고 가출, 동두천 기지촌에서 방황하던 지난날, 지방에 갔다가 밤무대에서 건달들을 만났으나 의연하게 대처한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또 자신이 몸이 왜소하지만 어디 가서도 절대 기에 눌리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선빵'(싸울 때 먼저 주먹을 날려 초반에 기를 꺾어버리는 것)이라면서 실전의 자세를 취해보이기도 했다.

"노래는 '나 이렇게 노래 잘해'하고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듣는 이들과 대화하듯 음식처럼 '맛있게' 부르는 것"이라며 조용필표 감성의 비결을 말하기도 했다. 콘서트장에서 가끔은 무기력증이 생겨서, 화장실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이겨냈다는 뒷이야기도 고백했다. 또 깊은 한숨을 쉬며 "과연 내가 언제까지 무대에 설수 있을 것 같냐"라고 연약한 구석을 털어놓기도 했다.

▲가수 조용필(이투데이DB)

슈퍼스타 조용필이라기 보다는 그냥 '아는 형님'이었다.

조용필의 결론은 오직 음악이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매순간 자신을 이겨낸 것은 오로지 음악이라고 했다.

나는 이 와중에도 용필이형의 ‘연애사’를 끌어내려고 은근슬쩍 유도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네가 뭘 궁금해 하는지 알겠는데, 이젠 어떤 여성을 다시 만나더라도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음악보다 사랑을 중요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미안할 것 같다”고 했다.

용필이형과의 1박 2일은 그 이후 어떤 인터뷰에도 비할 수 없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찐 인터뷰'였다. 이날 오고간 이야기는 극히 일부만이 당시 [조용필의 자전적 고백 수기-나의 노래, 나의 사랑]에 반영됐다.

그런데 황당한 사건은 우리가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며칠 후 부산지역 연예 주간지에 '조용필 묘령의 여기자와 단 둘이 1박 2일'이라는 가짜뉴스가 실린 것이다. 시종 자리를 함께 했던 나와 호텔리어 P부장, 김××부장은 투명인간이었다. 기사 내용 중 우리의 존재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그 기자는 A선배가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연예기자였단다. 화가 나서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항의 전화를 하니 돌아오는 말이 더 기가 막혔다.

"부산 온 사실 다 알고 있는데,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아서 무시당한 기분에 과장 기사를 썼다"라고 했다. 참고로 당시에는 연예인이란 직업은 소설처럼 쓰는 '가짜 뉴스'를 통해서도 재미를 주면 된다는 궤변이 있었다. 차 한 잔 마신일이 술 마신 걸로, 술 마신 사실 하나로 '열애'나, '결혼'으로 둔갑되는 추측성 스캔들 기사들이 많았다.

용필이형은 이 말도 안 되는 스캔들 기사 이야기를 전하니, 그냥 '허허허'하고 웃어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