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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리뷰] '시민덕희', 흥미ㆍ재미ㆍ의미 다 잡은 내돈내찾 추적극
입력 2024-01-14 12:00   

▲영화 '시민덕희' 포스터(사진제공=쇼박스)

170억 원 중 3200만 원. 전체 금액에선 0.18%의 적은 돈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큰돈이다.

발생 건수 1만 7089건, 피해액 3911억 원. 평균 피해액 약 2300만 원. 지난해 11월까지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이다. 보이스피싱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범죄이며,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의 거금을 빼앗아 그들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

이런 보이스피싱 범죄자를 중년 여성이 직접 붙잡는 이야기의 영화가 개봉한다. 2016년 40대 여성이 보이스피싱 총책을 검거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 '시민덕희'(제공/배급 쇼박스)이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라미란)가 자신에게 사기를 친 조직원 재민(공명)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고, 자신의 돈을 찾기 위해 보이스피싱 일당을 쫓는 추적극이다.

'시민덕희'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감이다. 운영하던 세탁소 화재로 인해 곤경에 빠진 주인공 덕희가 한 은행원으로부터 대출이 가능하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바로 다음 장면은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챈 덕희가 해당 은행에 방문하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에게 대출 상품을 제안하며 총 3200만 원 입금을 요구한 직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쓰러진다.

여기까지가 영화 시작 후 약 5분 동안의 내용이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아는 사람들이 많고, 피해자의 억울한 심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후 영화는 제보와 추적, 투 트랙으로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재민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위치를 덕희에게 전달한다. 덕희에게 피해를 준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어쩌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불쌍한 청년 재민의 복잡한 상황이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지옥을 탈출하길 원하는 재민의 간절한 바람과 그가 처한 열악한 상황이 주는 서스펜스는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피해자가 직접 자신과, 또 다른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준다는 서사는 '시민덕희'의 핵심 메시지이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임에도, "내가 바보 같아 당했다"라고 자책하는 사기 피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평범한 여성들이 뭉친 '팀 덕희'의 추적은 엉성해보여도 응원을 부른다. 느리다고 자책하며 주저앉는 거북이가 아니라,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저 멀리 도망가던 토끼를 따라잡는 거북이를 보는 느낌이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일당을 잡으러 가는 그 여정이 위험천만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덕희가 왜 보이스피싱 일당을 잡으러 직접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짜임새 있게 전개한다. 주인공의 마음에 몰입해 답답함이 치솟을 때마다 실소를 터트리게 하는 유머들도 적절히 배치됐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사진제공=쇼박스)

라미란은 굉장한 흡인력을 자랑한다. 생활밀착형 감정 연기, 눈물과 코미디를 오가는 넓은 스펙트럼 등 라미란이 없는 '시민덕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1980년대 후반 동네 옆집 엄마(드라마 '응답하라 1988'), 자식을 위해 '나쁜 엄마'가 되는 것도 마다했던 억척스러운 엄마(드라마 '나쁜 엄마'), 어쩌다 국회의원이 돼 이제는 거짓말에 능한 속물 중년(영화 '정직한 후보') 등 여러 작품에서 수많은 여성을 연기했던 라미란은 엄마라는 줄기 아래, 다양한 가지가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시민덕희'에서 또 한 번 보여준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사진제공=쇼박스)

덕희의 든든한 지원군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과의 앙상블도 뛰어나다. 매 작품 다른 얼굴을 갈아 끼우는 염혜란은 이번 작품에서도 중국어, 연변 사투리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다. 장윤주의 넘치는 에너지는 '시민덕희'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해주며, 지난해 드라마 '연인'으로 대세가 된 안은진의 '막내미'도 눈길을 끈다.

군 전역 후 첫 스크린 복귀를 앞둔 공명의 역할도 크다. 그는 어쩌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하게 돼, 어쩔 수 없이 사기를 치면서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재민의 내적 갈등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덕희에게 건네는 사과가 위선이 아닌 진심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사진제공=쇼박스)

이 영화의 최종 빌런 '총책' 이무생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분량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어쨌든 덕희의 승리가 예상되지만, 이무생의 열연은 손에 땀을 쥐며 영화를 보게 한다.

'시민덕희'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114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