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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승호를 얼마나 아세요?
입력 2016-07-11 12:35   

▲'봉이 김선달' 유승호(사진=권영탕 객원기자 sorrowkyt@)

대중의 시선 속에서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화 ‘집으로’(2002)에 몸을 싣는 순간, 유승호의 운명은 보다 시끌벅적한 곳으로 급물살을 탔다. “압도적으로 귀여워!” 외할머니 댁에 맡겨진 상우를 연기한 9살 유승호는 그렇게 전국 400만 관객의 남동생이 됐다. 만년 남동생일 줄 알았던 유승호의 변화는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감지됐다. 타인의 기회를 뺏을 수 없다며 대학 특례입학을 거부했을 때, 또래 친구들처럼 조용히 군대에 입대했을 때, 대중은 ‘우리가 어떤 틀 안에 가둬뒀던 유승호’를 빨리 놓아줘야 함을 짐작했을 것이다. ‘봉이 김선달’은 그런 유승호가 군 제대 후 선택한 두 번째 작품이다. 영화에서 유승호는 이전에 본 적 없는 대담하고, 쾌활하고, 능청스러운 얼굴을 보여준다. 유승호는 그렇게, 부단히, 자신을 증명해 내고 있다.

Q. 그동안 인터뷰를 통한 미디어 노출이 많지 않았어요.
유승호: 네. 이렇게 인터뷰를 많이 한 건 처음이에요.(웃음)

Q. 영화도 영화지만, 인간 유승호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요.
유승호: 그런가 봐요. 영화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하고 있어서…(웃음)

Q. 인터뷰를 일부러 피해왔던 건 아니죠?
유승호: 그런 건 아니에요. 너무 어려서 많이 나서지 못했을 뿐. 그리고 어릴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잘 못했거든요.

Q. 지금은 달려졌다는 뜻인가요?(웃음) 안 그래도 뭐랄까. 군대 다녀온 후에 뭔가 편해진 느낌이 있어요.
유승호: 정확하게 보셨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군대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군대라는 곳은 몇 천-몇 백 명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이잖아요. 게다가 제가 또 조교다보니…(웃음)

(사진=권영탕 객원기자 sorrowkyt@)

Q.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겠군요.
유승호: 네. 사람에 대한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한 선임을 만났어요. 원래는 사이가 안 좋았는데, 함께 근무를 서면서 친해진 선임이에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 고민을 털어놨더니 그러더라고요. “너 편하자고, 사람들 앞에서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다. 그건 이기적인 거”라고. “말을 하면서 실수도 해보고, 중간을 찾아가라”고 조언해줬어요. 생각해 보니까. 저 편하자고 침묵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로 바뀌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전역 후에도 선배님들을 만나면 먼저 말을 붙이려고 노력해요. 식사는 하셨는지, 잠은 잘 주무셨는지, 사소한 것들이라도 먼저 여쭤 봐요. 제 나름 많이 변화된 거죠.

Q. 조언을 해 준 선임과는 나이 차이가…
유승호: 아, 동갑이에요. 지금은 친구죠. 존칭이요? 에이~ 이젠 반말하죠. 그 친구가 “군기 빠졌다”고 헛소리를 하는데, 사회 나오면 뭐.(일동 웃음)

Q. 그런 고민을 편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군대 가기 전에는 없었던 건가요?
유승호: 네.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못했어요. 친구들은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잖아요? 그들을 무시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랬어요. 아무래도 공감의 정도가 다를 테니까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웃겨요. 학창시절에, 그들은 공부하면서 놀았어요. 저는 그때 수업이 끝나면 일을 해야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반대에요. 친구들은 꾸준히 일하고, 저는 일하다가 다른 곳에 가서 백수처럼 편하게 놀기도 하죠.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젠.

Q. 누리지 못한 시간이 아쉽기도 해요?
유승호: 많이 아까워요. 큰 건 아니에요. 수학여행 못 간 거, 교복입고 친구들과 PC방에 못 간 거, 데이트 못한 거. 그런 게 아쉬워요.

Q. 그래도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됐어요. ‘봉이 김선달’의 김선달은 지금까지 유승호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긍정적이고 유쾌한 인물입니다.
유승호: 네. 지금까지는 비극적인 운명의 캐릭터를 더 많이 연기했어요. 사실 코미디는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어요.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덜 찾긴 했었죠. 그러던 참에 ‘봉이 김선달’을 만났어요. 한 번쯤 코미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현장이 너무 즐거웠거든요. 촬영을 하는데, 스태프들이 웃음을 참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요.

(사진=권영탕 객원기자 sorrowkyt@)

Q. 스태프들이 가장 웃음을 참았던 장면은 어디인가요.
유승호: 제가 여장을 한 장면이죠. 뭐랄까. 재미있어서라기보다, 다들 어이가 없어서 웃는 느낌이었어요.(웃음).

Q. 제작보고회-언론시사회 때에도 여장에 대한 언급을 했죠? “너무 안 어울린다”고 강조하는 걸 보면서, ‘유승호 스스로가 자신을 굉장히 남성답다고 느끼고 있구나’란 인상을 받았어요.
유승호: 여장을 할 때까지는 저도 몰랐어요. 이전부터 “예쁘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스스로 ‘남자답다’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 때 “여장, 자신 있다”는 말씀도 드렸고요.(웃음) 이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제 딴에는 몸도 외소하고 해서 여장을 하면 어울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눈썹하며, 손에 쫙쫙 보이는 힘줄하며…징그럽더라고요. 테스트 촬영 영상을 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이 담겨 있어요.

Q. 여장을 통해서 스스로의 숨은 남성미를 발견한 셈이네요.
유승호: 네. ‘난 남자구나!’ 실감했죠.

Q. 유승호가 생각하는 남자다움은 뭐에요?
유승호: 음. 글쎄요. 다른 걸 모르겠지만,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힘든 건 남자가! 세심한 건 여자가!’ 저는 그렇게 나뉘는 것 같아요.

Q. 요즘 여자를 너무 모르는 거 아니에요?(웃음)
유승호: 그런가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여자는 힘든 걸 안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권영탕 객원기자 sorrowkyt@)

Q. 여성들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듯하네요. 뭐랄까. 상당히 고전적인 남성관이에요.
유승호: 환경 영향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사회 후배로서, 남자로서, 배우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Q. 그나저나 전역 후 연달아 사극에 출연했어요. 스크린에서 말이죠.
유승호: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작품을 선택할 때 의논을 많이 했는데. ‘조선마술사’와 ‘봉이김선달’ 개봉일 간격이 길지 않을 텐데 과연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을 했죠. 그럼에도 선택 쪽으로 마음이 움직인 건, 코미디이라는 점 때문이었어요. 캐릭터와 영화 분위기 차이가 크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도 사실, 지금 제 나이에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아역 때보다는 많아졌지만, 선배님들처럼 다양한 역할과 장르의 영화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나씩 해 보려고요. 모든 장르를 한 번씩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Q. 작품 선택에는 김선달이라는 캐릭터도 크게 작용했을 것 같아요.
유승호: 맞아요. 감독님이 ‘젊고 섹시한 사기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을 때 마음이 움직였어요. 저와는 다른 성정의 인물이라 더 호감이 갔죠. 여러모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김선달이라는 인물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어요. 김선달이라면 실패하고 좌절해도, ‘나는 실패했어! 나는 안 될 거야!’ 라는 생각을 안 할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 반대거든요. 사실 그것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때도 있어요. 걱정을 좀 달고 사는 편이거든요, 제가.

Q. 스스로에게 좀 야박한 편이네요.
유승호: 그런 편이에요. 팬들의 기대를 못 미쳤다는 생각이 들면, 고민에 빠져요.

(사진=권영탕 객원기자 sorrowkyt@)

Q 유승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는 결정적인 일화 몇 가지가 있어요. ‘더 이상 유승호가 우리가 알던 아역 유승호가 아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요. 첫 번째가 아마 특례입학 거부였을 거예요. 두 번째는 빠른 군입대였을 거고요. 당시 여러 말들이 나왔는데, 정작 당사자에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유승호: ‘이미지를 좋게 해야지’ 이런 건 절대 아니에요.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그랬어요. “나중에 멍청하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해!”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잘하지는 않았지만 중간 정도는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불만이 생기더라고요. ‘또래 연기자들은 연기에 집중하는데,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해? 나, 학교 안 가! 대학은 의무도 아니잖아!’ 하는 반항심이 생긴 거죠(웃음). 그리고 대학에 가도 출석을 제대로 못 할 텐데,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대를 일찍 간 건, 어릴 때 꿈이 군인이어서…(웃음) 군인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리도 당시, 작품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어요. 부모님은 조금 더 늦게 가라고 했는데, 제가 우겨서 서둘러 갔죠.

Q. 말을 들어보니, 반항기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웃음)
유승호: 하하, 제가 반항심이 좀 있었어요.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부모님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구나’란 깨달음을 얻었어요.(웃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부모님 말씀을 100% 따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합의를 보죠.

Q. 군복 입은 유승호는 우리가 아는 유승호와 많이 다르겠죠?
유승호: 다를 거예요. 일단 배우로서의 체면은 다 버리죠.(웃음) 이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군복을 입으면 자동적으로 반항심이 생겨요. 누가 “이것 좀 해 주세요!”하면, 평소 같으면 그냥 해주거든요. 그런데 부대에서는 “그걸, 내가 왜요?” 그렇게 돼요.(웃음) 그리고 시멘트 바닥이든 어디든 아무렇지 않게 눕게 돼요. 이상하게 그런 편안함이 생겨요.

Q. 그렇다면 대중이 생각하는 유승호와 실제 유승호는 많이 다르다고 느끼나요?
유승호: 그것 역시 많이 다를 거예요. 제가 일반 친구들과 노는 걸 보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남자들끼리 있으면 여자 이야기가 빠질 수 없죠.(웃음) 장난도 엄청 거칠게 해요. 누구 생일이면, 길거리에서 케이크로 난동을 부려요. 몸이 케이크 범벅이 되면, 저희 집에 가서 씻고 그러죠. 그게 우리만의 우정의 표현이에요.

(사진=권영탕 객원기자 sorrowkyt@)

Q. 여자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했는데, 그 또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한 고민은 뭔가요?
유승호: 저 포함 4명이 친한데, 문제는 여자 친구 있는 친구가 딱 한 명이에요. 여자 친구 있다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선, 저를 놀려요. “너는 그 얼굴로 뭐 하냐?”고.(일동 웃음)

Q. 그 얼굴로 솔로면 직무유기이긴 하죠.(웃음)
유승호: 하하하하. “너넨 여자 친구가 없으니 나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하는데, 어이가 없어가지고~(일동웃음) 여자 친구요? 직업상 자유롭게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직 큰 불만은 없어요.

Q. 아역 때부터 일을 했으니, 100% 본인의 의지로 배우 일을 한 건 아닐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꿈이 바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고요. 배우가 아닌 삶을 꿈꾸기도 하나요?
유승호: 제가 딱히 공부를 잘 한다거나, 운동을 잘하는 게 아니라서 다른 걸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사회봉사는 많이 하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도 하고 싶은데, 사실 ‘내가 가는 게 오히려 민폐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머뭇거리는 게 있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장례식도 잘 못 가요. 괜히 제가 주목받으면 미안하잖아요. 이 고민은 조금 더 계속될 거 같아요.

Q. 초반 일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서 변한 게 있다면요?
유승호: 말씀하신 것처럼 제 의지로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기에, 초반에는 일이나 캐릭터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졌어요. 그런데 연기를 한 해, 두 해 하면서 점점 캐릭터들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제 캐릭터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를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 혼자 돋보인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죠. 전체를 보고 거기에 맞춰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해요. 영화가 잘 나오면, 그 안에 있는 저 역시 자연스럽게 돋보이게 된다고 믿고요. 그게 가장 변한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