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초등학교 친구 3명과 보홀에 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뭐가 좋아 자주 가느냐고 물었더니 “가 보면 안다”면서 “때 묻지 않은 바다와 육지, 그리고 순박함 때문”이라고 했다.
로얄에어필리핀(Royalair Philippines)이 인천에서 보홀까지 4시간30분 만에 데려다 주면서 보홀 주목도가 확 달라졌다. 보통 동남아 여행하면 ‘싸구려 비지떡’이라고 표현하지만 이제는 양상이 그 달라졌다.
보통 인천공항에서 오전 7시5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리조트에서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고 오후를 온전히 쓸 수 있기에 판도가 바뀌었다.
보홀(Bohol)은 필리핀의 7200개나 되는 섬 중에서 열 번째로 크다. 4117㎢로 제주도의 두 배가 조금 넘는다. 위치는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700㎞, 널리 알려진 세부 막탄 섬에서 동남쪽으로 약 70㎞다. 예전에는 세부에서 국내선으로 30분, 크루즈로 2시간 걸렸으나 이젠 특별한 일이 아니고는 인천에서 직항으로 뚝딱이다.
보홀은 본섬과 국제공항이 있는 팡라오(Panglao)가 다리로 연결돼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알로나비치(Alona Beach)는 팡라오에 있다. 공항과 리조트는 차로 10분 정도여서 그것마저 여유롭다. 보홀의 요즘 기온은 아침 최저 24도, 낮 최고 32도로 불볕더위 보다는 휴양지다운 기후다.
◆육상 투어 하이라이트
보홀 여행은 보통 육상과 해상투어로 나뉜다. 물론 다이빙이나 호핑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주로 바다만 찾겠지만 육상도 바다 못지않다.
육상 투어는 팡라오 리조트를 출발해 제일 먼저 혈맹기념상(혈맹비)을 만난다. 스페인 총독과 보홀 추장이 서로를 형제로 여기고 술에 자신들의 피를 흘려 맹약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이다. 이 맹약은 백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맺어진 최초의 조약으로 기록돼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그 다음에는 천장 벽화가 아름다운 바클레온 성당(Baclayon Church)은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스페인 통치시대에 지어졌다. 산호가루와 계란 흰자를 섞은 코랄 스톤으로 만들어졌다.
노란 뱀 파이톤을 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나비농장(butterfly Farm)도 있다. 지난해 태풍으로 나비가 모조리 가출한 탓에 나비는 많지 않지만 대신 뱀들이 터줏대감이다. 볼파이톤, 비단밴 등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보홀 마스코트인 타르시어(Tarsier) 원숭이는 지구상 영장류 중 가장 작은 13㎝에 불과하다. ‘나뭇가지 위에 생쥐 한 마리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작다. 낮에 자고 밤에 사냥하는 탓에 대부분 자고 있다. 귀엽다고 하는데 오히려 사나워 보이는 게 특징이다.
키세스 초콜릿을 빼닮은 초콜릿힐은 제주 오름과 유사하다. 120m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초콜릿 모양의 원뿔형 힐이 1268개나 있다. 짝사랑하던 여인을 너무 세게 안다가 죽자 거인의 눈물이 초콜릿 힐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산간도로에 있는 울창한 수림이 터널을 이룬 곳이 맨 메이드 포레스트다. 그냥 일반도로여서 차에서 잠깐 내려 사진만 찍고 가는 곳이다. 진녹색 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청량감을 선사한다.
로복강(Loboc River) 크루즈는 선상 뷔페를 즐기면서 3㎞ 여정의 강 풍경을 살핀다. 싱어가 한·중·일 노래를 불러줘 운치를 더한다. 중간에 원주민 마을에 들러 전통공연을 감상하고 다시 원점 회귀하는 코스다. 녹색으로 물든 강을 따라 유유자적 만끽한다.
카약이나 보트를 타고 반딧불이가 내는 반딧불을 만나는 아바탄강(Abatan River) 반딧불 투어도 한 폭의 그림이다. 반딧불이는 맹그로브의 꽃가루를 먹고 살기에 유독 맹그로브에만 많다. 1~2월에는 꽃가루가 많이 생겨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출한다.
시간이 넉넉하면 초콜릿힐 인근에서 ATV를 타거나 로복강에서 짚라인을 타고 인근에 있는 대나무다리(Hanging Bridge)까지 돌아볼 수 있다. 팡라오에 있는 유일한 육상 투어인 히낙다단 동굴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더 욕심을 낸다면 팡글라오 선착장에서 일몰을 즐기고, 보홀 유일의 대형 쇼핑몰인 ICM몰을 둘러보면서 바나나칩이나 말린 망고를 선물로 준비해도 좋다.
◆해상 투어 하이라이트
보홀 해안은 수심이 낮다. 물이 맑은 탓에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일단은 멀리 가지 않고도 알로나비치에서 호핑투어를 즐길 수 있다.
조금 더 나간다면 전통 배인 방카를 타고 30분 만에 돌고래쇼를 눈앞에서 마주한다. 물론 “야 저기다”하고 소리 지르면 그때부터 수 초간 이어지다 끝이다. 다시 그들을 따라 가거나 아니면 기다리면 물 밖으로 올라오는 돌고래 행렬과 나란히 달릴 수도 있다.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고 싶다면 발리카삭이 제격이다. 에메랄드빛 해안에서 얼굴을 내미는 바다거북을 만나고 스노클링을 하면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맛도 그만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이놈들도 관광지인줄 안다.
발리카삭에서 가까운 버진 아일랜드는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지다. 물때를 맞춰 가면 은빛 모래톱이 펼쳐져 감동을 자아낸다.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이곳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한 폭의 그림이다. 얕은 물에 있는 맹그로브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살아 있음을 표현한다.
고래도 아니고 상어도 아닌 고래상어를 만나는 것도 기쁨이다. 10~20m에 달하는 덩치 큰 이놈들은 온순해 사람들이 접근해도 신경을 안 쓴다. 2020년에 오픈한 이곳은 세부의 오슬롭과 비슷하다. 고래상어 왓칭 포인트는 릴라(Lila)에서 3분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이다.
나팔링(Naplaing)은 정어리떼를 만나는 곳이다. 가벼운 스노클링으로 가능해 에메랄드빛 바다를 전세 낸 듯 돌아볼 수 있다. 클리프(절벽) 포인트라 작은 물고기와 산호초 등 다양한 수중생물을 만날 수 있는데 절벽 포인트는 전문적인 수영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용기를 내지 않는 게 좋다.
◆이도 저도 아니면 멍 때리기
알로나 비치 일대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일출 때부터 고래상어 투어에 나서는 다이버들을 태운 방카 엔진 소리로 항구는 시끌벅적하다. 오전에는 호핑투어 하는 관광객들로 해변을 수놓는다.
호젓한 해변에 앉아 필리핀 국민맥주인 산미구엘(San Miguel)이나 망고주스를 곁들이며 21세형 휴양이라는 ‘멍 때리기’를 해도 손색없다. 아니면 리조트 수영장 야자수 아래서도 마찬가지다. 번잡한 게 싫으면 만사 제쳐두고 해볼 만하다.
과일을 좋아하면 인근 시장이나 도로변에 있는 과일가게에 가도 된다. 망고는 2㎏에 1만원이면 족하다. 바나나, 수박, 귤 등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안타깝게 망고스틴, 두리안, 람부탄은 제철이 아니라서 자취를 감췄다.
식사도 하고 쇼핑을 즐기고 싶다면 본섬에 있는 ICM몰로 가면 된다. 알로나비치에서 40분 정도 걸리는데 이곳저곳 둘러보고 선물도 살 수 있다. 말린 망고나 바나나칩 등이 70페소(약 1600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