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남편들이 가족을 위해 만든 사랑이 넘치는 집을 찾아간다.
◆디자인에 美친 미대 남편이 지은 집
전라남도 나주의 빛가람혁신도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인해 신도시가 형성된 곳이다. 비슷비슷한 박공지붕들 사이, 하얀 평지붕에 카페나 갤러리 같은 모던한 외관으로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담장의 블록 사이로 빛이 아름답게 스며드는 이 집은 미대 출신 남편 백종준 씨가 서울에서 나주로 직장을 옮기면서 기러기 생활 끝에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시간이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는 집을 원했던 남편 종준 씨는 최고의 집을 짓기 위해 자신과 합을 맞출 건축가를 일 년 가까이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를 보고 첫눈에 반해 건축물대장을 찾아본 끝에 지금의 집을 설계한 건축가를 찾아냈다.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 형태를 ppt를 만들어 건축가에게 보여줄 정도로 집 짓는 일에 열정을 불태웠는데... 문제는 아내의 취향이 종준 씨 취향과는 극과 극이었다는 사실.
모던한 스타일의 집을 원한 남편과 달리 아내 반야 씨는 박공지붕에 빨간 벽돌,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화덕에 고추를 말릴 툇마루까지 고전적인 k-전원주택이 평생의 로망이었단다. 12년 결혼 생활 동안 화 한번 내지 않고 모든 일에 아내의 의견을 우선시했던 착한 남편 종준 씨는 집을 지으며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남들과 똑같은 집이 아닌 유니크한 디자인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고 아내를 설득하고 또 설득하기 시작했다.
종준 씨의 뚝심으로 완성된 집은, 단연 빛가람혁신도시 안에서도 자타공인 ‘비주얼 담당’이라 할 만큼 외관부터 독보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다. 아내 반야 씨는 지나치게 위압적인 느낌과 먼지 청소 등의 문제로 반대했지만 종준 씨는 책장을 사수하기 위해 결국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고안한 책장 커버를 만들어 씌우며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흡사 비행기 트랩 같은 디자인의 계단과 커다란 사각 거실 조명, 2층 유리 난간 역시 안전의 이유로 반야 씨는 반대했지만 집을 지으며 설득의 달인이 된 종준 씨는 원하는 디자인을 사수해 냈다.
많은 것을 져주고 양보해 준 아내를 위해 종준 씨는 반야 씨가 원하는 것들을 집안 곳곳에 만들어 주었다는데 과연 어떤 것들일까? 미대 출신 남편이 취향이 정반대인 아내를 설득해 지은 나주 ‘비주얼 담당’ 하우스를 탐구해 본다.
경기도 평택시의 한 택지개발 지구. 비슷비슷한 다가구 주택들 사이, 아담한 단독주택 한 채가 있다. 작은 별채가 딸린 이 집엔 공대 출신 남편 이동우 씨와 아내 이희영 씨가 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연구원인 남편 동우 씨가 동탄에서 평택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부부는 평택에 집을 짓게 되었다. 원래는 아파트를 생각하고 인터넷에서 아파트 가격을 찾아보던 중, 당시 천정부지로 치솟던 아파트 가격에 비해 땅이 훨씬 싸길래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저렴한 빈 땅을 사서 집을 짓게 된 것이라고.
뭐든 숫자로 분석하고 통계를 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본투비 공대남’ 동우 씨는 집 짓는 일도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으로 따져보았고 그렇게 치밀하게 자료조사를 한 끝에 패시브하우스협회를 알게 되었다. 패시브 하우스의 기술과 하자 처리 방식, 투명한 공사 과정에 믿음이 가서 다소 높은 건축비 대비, 장기적인 효율을 따져 본 뒤 패시브하우스로 집을 지었다. 그 결과, 아파트 살 때 대비 집의 볼륨은 2.3배 증가했는데 에너지 사용량은 80% 감소했단다.
또 한 가지, 눈으로 확실하게 본 것만 믿는 공대남 동우 씨는 실제 집을 지었을 때의 공간감이 어떨지 확인하기 위해 건축가의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60분의 1로 축소한 집 모형을 우드락으로 손수 만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지은 집에 입주한 지 2년 반. 숫자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동우 씨의 은밀한 취미 생활은 매일매일 이어지고 있는데... 엑셀에 자전거 출퇴근 시간부터, 전기 및 수도, 가스의 일별, 월별, 연도별 비교 분석 그래프를 만든다.
공대 남편 동우 씨는 숫자만 분석한 것이 아니라 집안 어디서든 세 식구가 시선을 마주칠 수 있도록 시선의 각도까지 철저히 계산했다. 본채와 별채 사이, 계단과 주방 사이, 2층 난간과 거실 사이 모두 가족 간의 따뜻한 눈 맞춤이 오가고 세 식구는 더 끈끈해졌다. 숫자 덕후 공대 남편이 칼 같은 데이터로 분석하고 지은,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집을 탐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