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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탐구 집' 예천 고래닮은집ㆍ충주 도레미집
입력 2025-11-11 21:50   

▲'건축탐구 집' (사진제공=EBS1 )
'건축탐구 집'이 예천 고래 닮은 집과 충주 도레미 집을 찾아간다.

11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아내 몰래 자신만의 아지트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언덕 위 고래 닮은 집

경상북도 예천에 위치한 어느 마을, 비탈진 산자락에 고래 닮은 집이 있다는데? “땅이 시키는 대로 지었다”며 네모반듯한 건물 하나 없이 각기 다른 독특한 형태로 지어진 네 채의 집.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모습이 완성되었을까?

도시보다는 전원생활을 꿈꿔 왔었다는 부부는 반려동물인 강아지와 고양이가 점차 늘어나 더 늦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본격적인 집짓기를 결심하게 된다. 몇 년간 집을 짓기 위해 서울 근교를 찾아 헤맸지만 마땅한 땅을 찾지 못했다. 부부가 집짓기를 포기하려는 순간, 운명처럼 돌아가신 아버지의 땅을 떠올렸다. 땅을 본 순간 편안함을 느꼈다는 부부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예천에 터를 잡기로 결심한다.

대지의 주인이 인간이 아닌 자연이라고 생각했던 부부는 땅의 모양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소한으로만 땅을 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뽕나무, 집의 중심이 된 감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대부분을 살려냈다. 심지어 대지 안에 있는 묘지조차 "좋은 땅이니 묫자리로 썼을 것"이라며 받아들였다. 부부의 신념대로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며 지은 결과, 총 4채의 건물이 각기 다른 독특한 형태와 높이로 자리하며 자연스럽게 골목 있는 집이 탄생했는데 건물이 배치된 모습이 고래를 닮아 있었단다. 평소 고래를 좋아하고 그림도 많이 그려오던 남편에게는 운명 같은 집이었던 셈이다.

집의 내부는 더욱 독특하다. 부부는 남향의 탁 트인 전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조건임에도, 일부러 북향으로 집을 짓고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에 최소한의 창만 내었다. 자연은 밖으로 나가면 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하게 된 선택이란다. 집 안은 아내가 유학 시절부터 벼룩시장에서 모아온 앤티크 가구들로 가득하다. 1860년대에 만들어진 가구를 리폼해 침대 헤드로 쓰는 등, 편리함보다는 부부의 취향이 담긴 물건들로 공간을 채웠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 같아 보이는 독특한 벽지다. 아내가 직접 고른 이 벽지를 위해 층고를 벽지 높이에 맞춰 수정하기까지 했다고. 덕분에 바깥의 자연과 어우러지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내부가 완성되었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또 같이 사는 부부의 삶이다. 성향이 비슷한 듯 다른 부부는 각방도 아닌 각 채 생활을 택했다. 아내는 본채, 남편은 별채를 사용하는 대신, 본채의 주방은 부부가 함께 사용한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식사는 함께하고 싶었던 부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본채가 아내의 공간이기에 자신만의 공간을 확장하고 싶었다는 남편! 아내가 전시 공간이 경기도로 이사 간 틈을 타, 구름다리로 이어진 두 번째 건물을 무단 점거했다는데. 그렇게 남편의 취향대로 꾸며진 공간은 그의 영화관이자 친구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아지트가 되었다.

집 또한 생명이며 나와 함께 성장해 간다고 말하는 부부. 아내는 이 집이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집이라며 계속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각 채의 부족함을 서로 다른 채가 채워주는,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건축탐구 집' (사진제공=EBS1 )
◆바람과 햇볕 따라 만든 집

충주에는 키가 다른 세 채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도레미’ 집이 있다! 주거동, 거실동, 주방동을 나누어 기능에 따라 지었더니 이러한 형태가 되었다는데. 용도별로 채를 나누어 집을 짓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가인 남편의 오랜 꿈은 ‘채 나눔’ 집을 짓는 것이었다. 건축을 업으로 삼아온 그는 우리나라 옛 조상들이 한옥에 살았던 이유에 대해 공부하며, 채를 나눈 집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집의 형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원하지 않아 지어볼 기회가 없었다는데. “그렇게 하고 싶으면 우리가 살아보자”는 아내의 응원에 은퇴를 앞두고 집을 짓게 되었다.

남편이 채 나눔을 실현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바람과 햇빛 때문이었다. 집의 각 채를 나눈 덕분에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이 바람과 햇빛이 드나드는 길이 되었다. 여름철 남동풍과 겨울철 북서풍의 방향을 고려해 남쪽 창은 시원하게, 북쪽에도 창을 작게 내어 자연 환기를 극대화한 결과 집안 어디서든 맞통풍이 가능하다. 그 덕분에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집안 곳곳의 식물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결로나 곰팡이 문제도 전혀 없다고 한다. 게다가 벽면의 대부분을 유리로 마감해 사계절 내내 햇빛을 깊숙이 받아들이고, 각 채 사이 공간의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그대로 집안으로 끌어들여 자연과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각 채를 주거, 거실, 주방의 기능별로 구분하여 지은 이 집. 덕분에 주방에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 등이 다른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 각 공간을 이어주는 복도는 채가 나뉘어 있음에도 편리한 생활이 가능하게 한다. 독특한 점은 내부 공간보다도 넓은 테라스인데, 한옥의 대청을 차용한 매개 공간으로 내외부를 크게 연결하여 바깥 공간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남편이 야심 차게 만들었다는 정원을 향해 열린 화장실. 거대한 통창 덕분에 햇빛이 잘 들어 곰팡이 하나 없이 쾌적하지만, 이 공간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아내의 로망이었던 커다란 드레스룸이 희생되었다. 아내는 "남편이 내 얘기는 안 듣고 다른 사람들의 로망을 들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집은 흠 잡을 곳 없이 만족하고 살고 있다.

아내는 집을 짓기 전,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지어보자 했다는데. 그 말대로 이 집이 부부에게는 지난날의 보상이자 선물 같이 느끼며 살고 있단다. 오랜 세월 꿈꿔온 남편의 채 나눔 집을 탐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