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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탐구 집' 아지트 같은 집
입력 2025-12-02 21:50   

▲'건축탐구 집' (사진제공=EBS1 )
'건축탐구 집'이 대구 테크노폴리스 택지 지구의 ‘ㅁ’자 집을 소개한다.

2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사생활 보호와 공존의 해답을 찾은 ‘ㄷ’자 집을 찾아간다.

◆알고 보면 틈 사이로 마음을 나누는 집

대구광역시 군위군의 한 시골 마을. 오래된 촌집이 즐비한 동네에 사생활을 보호하려 꽁꽁 싸매고도 마을에 자연스레 녹아든 집이 있다. 언뜻 평범한 단층 주택처럼 보이지만 적벽돌 담벼락이 시선을 강탈한다.

층간 소음 스트레스가 큰 아파트를 벗어나 주변 이웃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산 아래 집을 짓고 가족끼리만 살고 싶었다는 건축주 화경 씨. 외딴곳에 홀로 사는 건 위험하다는 친정아버지의 충고에 너무 크지 않은 동네에서 살기로 결심. 대구광역시 인근을 둘러보던 중, 군위군의 고즈넉한 마을에 이끌렸단다.

화경 씨 부부에게 집을 지어준 건 세상에서 동생을 가장 잘 아는 친오빠이자 건축가 정진호 씨. 삼 남매 중 장남과 막내딸인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각별한 남매 사이였다. 오빠는 건축을, 동생은 성악을 공부하러 떠난 프랑스 유학길. 타국에서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며 더욱 끈끈한 동지애가 생긴 남매는 여전히 애틋하다고. 화경 씨는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오빠에게 설계를 맡겼다. 게다가 평생 무상 수리가 가능하니 일거양득. 부부 건축가인 오빠와 올케는 마치 내 집 짓듯 동생 부부의 성향을 고려해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시골 마을에 녹아들 수 있는 집을 지었다.

사생활 보호가 우선인 동생의 요구에 담장으로 1차 시선을 차단하고, 단차가 있는 지형의 특징을 살려 ‘ㄷ’자 구조로 공용공간과 사적공간을 분리했다. 상부에는 한눈에 들어오는 주방과 거실이 있고, 사적공간인 하부에는 아이들 방과 미니 거실, 안방으로 구성했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내밀한 공간이 자리하는 설계다. 거실에서 외부로 이어진 중정에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다.

설계 당시 건축가 오빠 부부는 설계가 아닌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다름 아닌 지적도상 존재하지 않는 농로! 오래전부터 논이었던 부지였기에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 있었다. 간섭받길 싫어하는 동생 부부를 알기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농로는 살리고 담벼락을 뚫자!’라는 것. 화경 씨는 건축가 오빠의 제안에 당황했지만, 도시 사람이 전원생활을 하려면 마을과 융화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 그 길을 살리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화경 씨네 집 담장은 사면을 두르되 살짝 틈새를 두어 마을 주민들이 우회해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건축탐구 집' (사진제공=EBS1 )
◆극 내향형 집순이·집돌이 안성맞춤 ‘ㅁ’자 집

도시인들이 아파트를 벗어나 터를 고를 때 접근이 쉬운 건 도심 인근의 평지형 택지 지구다. 그런데 평지형 택지지구는 부지가 따닥따닥 붙어있어 사생활 보호가 설계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택지지구는 담장 형태부터 외장재, 지붕 모양 등 각종 규제가 많아 지구 단위 계획상 사생활 보호를 강조한 집을 짓기가 쉽지 않다. 까다로운 규제를 지키며 사생활까지 지킨 집이 대구광역시 테크노폴리스 택지 지구에 숨어있다.

외부로 난 창은 고작 하나. 밖에선 마당도, 창도, 실루엣도 안 보여 동네 사람들조차 저 집에 어떤 사람들이 살까 궁금해할 정도. 엄마, 아빠, 아들까지 내향인 그 자체인 가족은 집에 들어서면 세상과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초등 교사로 재직 중인 부부. 대구 시내 아파트 거주 당시, 엘리베이터나 쓰레기 버리러 오가는 길에도 학부모와 학생들을 수시로 마주치는 생활이 불편해 인근 택지지구에 집을 짓기로 했다.

고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택지지구에 땅을 사고 보니 옆 땅과 바짝 붙어 있었던 것. 땅을 살 때조차 남향인 앞 땅이 아닌 도로변에서 벗어난 뒤 땅을 샀을 정도로 ‘사생활 보호’가 1순위였던 부부에겐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규제 때문에 하염없이 담장을 높게 두를 수도 없었던 부부는 건축가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아예 벽을 담으로 삼는 ‘ㅁ’자 구조를 택했다. 외관만 보면 요새 같지만, 안으로 한 발짝만 들어서면 햇살이 쏟아지는 커다란 중정이 맞아준다. 중정 사면을 통창으로 둘러 실내 모든 공간에 하루 종일 해가 잘 드는 집이 탄생했다. 밖에서 볼 땐 어둡지 않을까 싶지만, 사방으로 빛이 들어 집 안에서도 눈이 부실 정도.

‘ㅁ’자로 벽을 둘러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이 집엔 세 식구 각자 숨기 좋은 공간이 있다. 일과 중 많은 아이와 소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집에서만큼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부부는 자신들만의 고적한 아지트를 마련했고, 곧 사춘기가 찾아올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게도 엄마 아빠의 시선에서 벗어날 자유를 위해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해도, 자연도 들지만,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는 숨어있기 좋은 집! 대구 달성군 ‘ㅁ’자 집에서 각자 어떤 방식으로 생활 리듬에 맞춘 삶을 살아가는지 <건축탐구 집>이 탐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