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요리사2'에서 이금희 셰프(메이필드호텔 봉래헌·낙원 총괄 조리장)가 선보인 공주 밤죽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한국적인 온기와 깊은 맛으로 심사위원들의 미각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금희라는 요리사를 ‘밤죽’ 하나로 정의하기엔 그의 시간은 길고, 이야기는 깊다. 방송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그의 맛과 철학을 찾아, 봉래헌으로 향했다.
지난 7일 서울 강서구 메이필드호텔 서울의 한식당 봉래헌에서 만난 이금희 조리장은 국내 5성급 호텔 유일의 여성 총괄 조리장이라는 화려한 타이틀보다, 2002년부터 24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한식의 맛을 지킨 '한식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흑백요리사' 시즌1 때도 섭외가 왔었어요. 그때도, 사실 이번에도 득보단 실이 많을 것 같아 출연을 고사했었습니다."

이금희 조리장에게 서바이벌 쇼 출연은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제작진의 진심이었다. 후배 요리사들을 조명하겠다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했고, ‘마지막 불꽃’을 한 번쯤 태워보자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흑백요리사2'에서 이 조리장은 '백수저' 셰프 20인 중 한 명으로 등장해 2층에서 '흑수저' 80인의 '흑수저 결정전'을 내려다봤다. 여유롭게 관망하는 듯한 그 장면 뒤에는 엄청난 긴장감이 숨겨져 있었다.
“제가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위에서 지켜보는 게 더 떨리더라고요. 흑수저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데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백수저들은 내공이 쌓이다 보니 역동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반면 모든 걸 걸고 나온 흑수저들은 눈빛부터 달랐습니다. ‘나도 저렇게 치열했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흑백요리사2'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는 이 조리장이 만든 '공주 밤죽'의 은은한 맛에 감탄했다. 안성재의 호평을 받았던 그 '공주 밤죽'이 현재 봉래헌의 시즌 한정 코스 '화연(花宴)'의 첫 번째 요리로 제공되고 있다. 방송에서 선보였던 버전보다 한층 완성도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흑백요리사'에선 한정된 시간 때문에 찹쌀가루를 사용했는데, 여기 봉래헌에서는 쌀을 직접 불린 뒤 갈아서 씁니다. 과정이 번거로워도 이렇게 해야 쌀이 훨씬 부드럽게 풀리고 재료와 잘 어우러지거든요. 스태프들과 논문 쓰듯이 연구하며 완성했습니다."

이금희 조리장은 화려한 기교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가 봉래헌에서 가장 추천하는 메뉴 중 하나인 구절판에도 그의 요리 철학이 녹아있다. 얇게 부친 밀전병에 여덟 가지 재료를 싸 먹는 구절판은 봉래헌의 격조를 상징한다. 손이 정말 많이 가는 메뉴임에도 그는 “전통의 색과 맛을 보여주는 데 이만한 음식이 없다”며 구절판을 고집스럽게 지켜오고 있다.
구절판이 봉래헌의 ‘멋’을 상징한다면, 식탁의 기본인 김치는 이금희 조리장의 ‘맛’을 지탱하는 뿌리다. 그는 메이필드호텔 서울에 합류한 이후 지금까지, 김치만큼은 외부에 맡기지 않고 직접 담그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봉래헌에서 제공되는 모든 김치는 이 조리장의 진두지휘 아래 만들어진다. 충남 예산 직영 농장에서 재배한 무와 배추, 5년 이상 간수를 뺀 태안산 천일염, 영양산 태양초가 어우러진다. 손님들 사이에서 “김치만 따로 판매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나올 정도로 깊은 맛을 자랑한다.
"사 오는 김치는 편하긴 해도 일주일만 지나면 금방 물러서 먹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좋은 배추 골라 내 손으로 직접 절이고, 방부제 없이 버무린 김치는 다릅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묵히면 묵힐수록 깊은 맛이 나죠. 한식의 시작은 결국 김치 아닙니까. 그 기본만큼은 제 손으로 직접 챙겨서, 손님들에게 '진짜'를 내어드리고 싶습니다."
②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