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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지훈 “연기는 내게 흥미로운 놀이거리”
입력 2017-11-06 08:50   

▲배우 김지훈(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작은 얼굴에 꽉 들어찬 이목구비. 김지훈은 ‘실물깡패’로 유명한 배우다. “제가 감기 기운이 조금 있어서…” 매니저가 준 유자차를 마시면서 김지훈은 코가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만진 티가 역력한 헤어스타일에 때 이른 패딩 점퍼. 하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던가.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여전히 그는 근사했다. “나처럼 생긴 검사는 찾기 힘들 것”이라는 실없는 농담에 정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은 5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에서 검사 한준희 역을 연기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비상한 두뇌와 서슬 퍼런 독기를 타고난 인물이다. 아버지 장판수(안길강 분)와는 일찌감치 연을 끊었고 윤중태(최종환 분)의 후원을 받아 검사 자리에 올랐다. 칼날 같은 정의감이 그를 살게 하는 유일한 가치다.

김지훈은 한준희의 외골수 같은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의상을 구입했다. 젊고 트렌디한 의상은 피하고 보수적이면서도 세련된 정장을 찾아 입었다. “한준희가 입은 옷의 90%는 제 옷이에요.” 미용실에서 관리 받던 헤어스타일도 나중에는 직접 만졌다. “샵 다녀온 티가 너무 나더라”는 이유에서였다. “저처럼 생긴 검사를 찾는 건 힘들겠지만(웃음) 얼굴을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의상과 헤어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배우 김지훈(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한준희는 외로운 사람이다. 의적 J(지현우 분)를 잡으려 했더니 아버지 장판수가 J를 감싸고돈다. 급기야는 아들 준희의 손에 체포되면서까지 진짜 J 장돌목을 보호한다. 후원자 윤중태는 알고 보니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원흉이다. 김지훈은 한준희에 대해 “차갑고 건조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가진 사연과 깊이는 ‘인간극장’ 수준”이라면서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 가장 감정의 진폭이 가장 컸다”고 고백했다.

김지훈은 “외롭고 쓸쓸한 삶이 준희의 길”이라고 말했다. “삶이 너무 각박해 로맨스를 할 만한 여유도 없었어요.” 그런 준희에게 가족은 가장 큰 위안이었다. 얼음장 같던 그의 마음을 녹인 것도, 복수심에 휩싸여 윤중태와 공멸을 꿈꾸던 그를 멈춰 세운 것도 가족이었다. 하지만 정작 김지훈은 “나는 해피엔딩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말 가족드라마이기 때문에 예상을 크게 벗어나기는 힘든 부분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바랐어요. 준희가 돌목이를 위해 크게 희생한다던지 장렬하게 전사하는 식으로요. 안타까워하는 분들은 많겠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아예 반전으로 돌목이의 뒤통수를 때리고 제 2의 윤중태가 되거나요. 하하하.”

▲배우 김지훈(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스스로에 대한 김지훈의 평가는 박하다. 이달 23일 개봉하는 영화 ‘역모-반란의 시대’를 언급할 때도 그럴듯한 포장 대신 냉철한 진단이 우선했다. “저예산 독립영화 같은 느낌이에요. 감독님의 인맥, 배우들의 열정으로 탄생한 영화죠. 그걸 감안하면 굉장히 훌륭한 퀄리티의 영화이지만, 작품이 상영관에 걸리는 순간 얘가 어떤 사연을 가진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돼요. 오로지 완성도만 갖고 블록버스터 작품과 경쟁하는 거죠.”

덕분에 외부의 평가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스스로의 혹독한 시선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타인의 평에 대해서는 내구성이 생긴 것 같아요.” 물론 밑도 끝도 없는 인신공격이나 비난에는 상처가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평가 기준을 통과한 일에 대해서는 신념을 갖고 돌진한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에 매주 참석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한 것도 이러한 성격에서 비롯한다.

“누군가는 저를 비난하거나 어떤 틀에 넣어서 바라봤을 지도 몰라요. 그 때문에 불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정치 색깔을 드러내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문제가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뜻을 모았던 거예요. 사진을 올린 건 마음만 있는데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가기 전까진 얼마나 춥고 귀찮아요.(웃음) 하지만 누군가는 저를 보면서 ‘저 사람도 가는데 나도 가자’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배우 김지훈(사진=플라이업엔터테인먼트)

2002년 데뷔해 올해 활동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니시리즈부터 일일극,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에 출연해 왔지만 MBC ‘왔다 장보리’가 높은 시청률 시청률을 거둔 덕에 ‘주말극 배우’의 이미지가 커졌다. 김지훈은 “주말극과 미니시리즈,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다”면서 “묵묵히 일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를 가족드라마에 적합한 이미지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트렌디한 작품도 많이 하고 싶고 할 수 있거든요. 물론 신선한 배우를 원하는 상황도 이해가 돼요. 제가 노력해야죠. 인지도를 쌓거나 미친 연기력을 보여주거나, 혹은 미친 연기력으로 인지도를 쌓으면서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묵묵히 일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김지훈은 “절박하다.” 열심히 활동했지만, 배우로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못해본 것이 더 많다. 하지만 김지훈은 절박함을 동력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는 “기본적으로 연기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고 했다. 자신이 만난 역할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 탐구하고 실험하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 “연기하는 일 자체가 제겐 굉장히 흥미로운 놀이처럼 다가와요.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그 즐거움, 연기 자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