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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이서원 가라사대
입력 2017-11-20 08:45   

▲이서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스물한 살의 이서원은 공자의 어록을 담은 ‘논어’를 ‘인생 책’으로 꼽는다. 용서를 위대한 덕목으로 여기고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사건에서 깨달음을 얻는단다. 인생을 두 번 쯤 살아본 듯한 말투로 기자를 놀라게 만들다가도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얼굴로 씨익 웃어 보이는 이 남자. 정체가 궁금하다.

Q. 인터뷰를 보니 공자를 ‘인생책’으로 언급했더군요.
이서원:
제가 말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공자를 읽고 나서 언변이 달라졌어요. 꼭 읽어보세요. 정말 재밌어요. 많은 걸 알게 해준 책이에요.

Q. 공자에서 발견한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요.
이서원:
공자님이 말씀하신 인생의 108계가 있어요. 인생을 사는 108가지 방법이요. 물론 그걸 다 지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공자인 거겠죠.(웃음) 아무튼, 공자님 제자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찾아가서 ‘선생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은 무엇인가요?’ 물어봤대요. ‘사랑인가요? 효인가요?’ ‘아니다. 용서다.’ 그 글을 읽고 저 또한 용서처럼 어려운 건 없다고 느꼈어요.

Q. 공자님 말씀에 동의해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은 무엇일까요?
이서원:
저도 용서라고 생각해요. 거기엔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까요. 지나간 일에 대해 한탄만 하고 있으면 발전할 수 없어요. 하지만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잘못을 고쳐 나아갈 때 발전도 가능해지죠. 깨달음, 발전, 변화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이해할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포함된다는 말이 매우 인상 깊습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인가요?
이서원:
사실 제가 기독교 신자에요. 성경에도 원수를 사랑하는 말이 나오잖아요. 불가능하다고 믿는 일이기 때문에 (용서의 가치가)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서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에 늘 노출되어 있는 직업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쉽게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원 씨는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한탄한 적 없었어요?
이서원:
그런 적은 있어요. 내가 생각 없이 혹은 본능에 따라 한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생을 하거나 피해를 입은 경험.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이잖아요. 그런데 내 행동으로 인한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니까, 저를 원망하기 보다는… 제 마음이 괴로웠죠. 가령 제가 늦잠을 잤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저를 기다려야 하고 누군가는 저를 변호해야 하겠죠. 그런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커져요.

Q. 이번에는 첫 지상파 주연을 맡았으니 책임감이 더 커졌겠어요.
이서원:
어른이 되지 못했던 재걸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연기했잖아요. 재걸이의 생각이 제 생각이 된 것 같아요. 늘 곧게 생각하고 조심해야겠다는 재걸이의 생각이 제 생각이 되곤 합니다. 이참에 연말 목표까지 말씀드리자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하하.

Q. 산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이서원: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오면서 너무나도 좋은 말들과 조언, 응원을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열심히 뛰다 보니까, 그것들을 가지기만 한 채 정리를 못한 것 같더라고요. 조용히 정리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내년의 목표가 자동으로 생기겠죠.

Q. 말씀하신 것처럼 주위에서 정말 많은 얘기가 들리기 시작할 때일 것 같아요.
이서원:
변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그건, 누군간 변했다는 의미겠죠. 그로 인해 타격이나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할 거구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남을 생각하고 위하고 배려하는 것, 내 행동이 어떤 파급을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하며 신중히 살아가는 것. 그게 변하지 않으면 저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Q. 때론 ‘너무’ 많은 얘기들이 들려서 앞길이 흐려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서원:
제 길은 뚜렷하게 보여요. 그런데 좀 어지럽죠, 좋은 말들만 들으니까. 뭐 하나만 잘못해도 너무 잘못한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생각 정리를 하고 싶어요.

▲이서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굉장히 어른스럽다가도 한 순간엔 스물한 살 또래처럼 느껴지네요.
이서원:
그렇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좋아요. 제 나이 같은 모습이 있기에 발전이 있을 수 있는 거고 어른스러운 모습이 있기에 또래보다 특별하다는 거니까.

Q. 무엇이 어른스러운 면을 빨리 갖게 만들었을까요?
이서원: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많이 했던 것?(웃음)

Q. 독서는 부모님의 교육 방침이었나요?
이서원:
강제는 아니었어요. 강제였어요, 사실. 100인의 위인전을 다 읽으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읽기 싫었어요. 어머니께서 내리신 특단의 조치가 위인전을 만화책으로 사주셨어요. 하하.

Q. 초등학생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일찍 진로를 정한 데에는 독서가 영향을 줬을까요.
이서원:
환경이나 성격도 영향을 줬겠죠?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으니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알고 싶다는 욕망은 충만했던 것 같아요.

▲이서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수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적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의 ‘애어른’ 같은 자세가 사고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서원:
한 차량의 신호위반으로 당하게 되어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었는데, 의사선생님도 놀라실 만한 짐승 같은 회복력으로 5주 만에 퇴원을 하게 됐죠. 의사 선생님들이 한 주 한 주 정기 검진을 하실 때마다 놀라셨어요. 어우, 뼈가 붙었네요? 하시면서.(웃음)

Q. 그 때의 이서원은 사고로부터 어떤 깨달음을 얻었나요?
이서원:
세상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누구 하나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모른다는 걸 그 때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죠. 그 때 모 영화에, 상업 영화는 아닙니다만 업계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영화에 주인공으로 합격해서 출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사고가 났죠. 촬영 3주 전이었어요.

Q. 그 때 그 운전기사, 용서했어요?
이서원:
저는 그 분에게 아무 감정 없어요. 그 분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의 이서원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잃어봤기에 잃기 싫다는 마음을 절실하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오히려 그 분에게 감사하죠.

Q. 감사하다니, 너무 성인군자 같은 얘기 아닙니까.(웃음)
이서원:
저는 정말 감사해요. 그 분이 아니었으면 제가 자만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갑작스럽게 주인공 자리에 간 거잖아요, 아무것도 없던 시기에. 물론 감사만 한 건 아니죠. 왜 위반을 하셨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 분도 이제 신호위반을 하지 않으시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감사해요. 깨달음이라는 게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공자님께서 하셨어요.(웃음) 간단한 진리라도, 깨달음이라는 건 내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더라고요.

▲이서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이서원의 삶은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 같아요.
이서원:
즐겁게 살죠. 즐겁게 혹은 딥(Deep)하게. 제가 서글서글하고 장난칠 때도 많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때도 많아요. 극과 극이죠? 사색에 잠겨 있을 때에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생각할 게 있거나 상담해줄 때, 누군가의 고충을 들었을 때 딥해지죠.

Q. 조심성이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긴 하지만 서원 씨는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한 편인 것 같아요.
이서원:
‘병원선’을 하면서 많이 조심하게 됐어요. 원래는 작품 끝나면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신나게 놀고 그랬는데, 이제는 줄일까 생각해요. 너무 신나게 놀다 보면 본분을 잊을 수 있는 거고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랬을 때 나오는 파급 효과를 생각하면 조금 줄이는 게 맞죠. 그 친구들은 40년이 지나도 제 친구들일 테니까 줄여도 괜찮겠다 싶어요.

Q. 왜 ‘병원선’을 하면서 더 조심하게 됐을까요.
이서원:
20대가 30대를 연기하면서 30대의 생각을 알게 됐기 때문이지 않을까요.(웃음)

Q. 어른이 되지 못한 재걸이가 어른이 되는 모습을 연기했다고 말씀하셨죠.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과 어른인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뭐라고 생각해요?
이서원:
‘병원선’에서 설명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청춘은 자신의 상처 혹은 목표에 갇혀 있었다는 거예요. 캐릭터마다 사연이 있는데, 그걸 이겨내고 디딤돌 삼아 일어나는 게 어른이 되는 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이서원(사진=고아라 기자 iknow@)

Q. 서원 씨는 지금 스스로 어른이라고 느끼나요?
이서원:
저는 아직 아니죠.

Q. ‘병원선’의 청춘이 뭔가에 갇혀 있던 상태였던 것처럼 지금 서원 씨를 가둬놓는 건 뭐예요? 가장 깨뜨리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이서원:
깨고 싶은 건 없고요. 그냥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지식을 갈구하고 있어요. 많은 걸 알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 비유하자면 외장 하드를 하나 갖고 싶어요.

Q. 사람들의 생각을 저장해놓을 만한?
이서원:
네. 저는 연예계에 있었던 시간이 짧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상황을 알지 못해요. 배우들의 상황이야 제가 배우이니 잘 알지만, 관계자들의 상황이나 아이돌 그룹의 생활 같은 건 잘 모르거든요.

Q. 그들의 상황을 알고자 함은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건가요?
이서원:
그렇죠.

Q. 도대체, 얼마나 완벽해지려고요.
이서원:
저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꿈이죠.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꿈이에요. (Q. 서원 씨가 힘들지 않을까요?) 힘들지 않은 꿈은 없잖아요.

Q. 지금 이서원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뭔가요?
이서원:
저를 믿어주는 모든 사람들이요. 친구, 가족, 회사 식구들, 팬들, 스태프들. 많죠. 너무너무 많아요. 이 분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저는 지금처럼 살지 못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