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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올댓이즈] 박유천의 팬으로 산다는 건
입력 2016-06-21 13:44    수정 2016-06-21 13:45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해무’ 개봉을 앞둔 2014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인터뷰 도중 박유천은 이런 말을 했다. “‘팬이 된지 10년 됐어요!’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신기하면서도 반가워요. 동시에 묻고 싶죠.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니?’ 라고.” 박유천이 어떤 의미로 ‘버티다’라는 말을 내뱉었는지 짐작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은 ‘동방신기 박유천’에서 ‘JYJ 박유천’으로, ‘아이돌’에서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아이돌 출신 배우’로 옮겨가는 굴곡진 시간을 함께 해 준 팬들에 대한 ‘어떤 마음’의 표현이었으리라.

그리고 2016년 6월. 박유천은 1주일 사이 네 명의 여성에게 잇달아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며 추문의 주인공이 됐다. 추락, 추락, 추락, 연이은 이미지 추락. 박유천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을 보며 그가 ‘버텨준 팬’이라고 이야기한 이들을 떠올렸다. ‘그의 팬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버텨내고 있을까’ 아니, ‘버텨내질까…’ 간단치가 않다. 이건 버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니까.

박유천 팬들이 느끼고 있을 참담함은, 단순하게 믿고 따라던 오빠의 추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사랑해 온 이에게서 상상도 하지 못한 면모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혹은 상실감. 이번 사건이 박유천의 무혐의로 종결된다 할지라도, 그날, 그 시간, 하필이면, 그 자리에(유흥업소), 그가, 공익근무요원 신분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박유천 팬들의 비극은 시작된다.

그를 지지해 온 팬들이 느끼고 있을 황당하고도 허무하면서 마음 아픈 동시에 화가 나는 감정은 어디에서 위로받아야 할까. 박유천의 팬으로 살아왔다는 것, 혹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해본다.

# 동방신기→JYJ, 팬덤의 1차 분열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유천이 동방신기의 일원으로 가요계에 등장한 건, 2003년 12월이다. ‘동방의 신이 일어난다’는 팀명은 허무맹랑했지만, 행보는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동방신기는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K팝 열풍의 도화선이 됐다.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동방신기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2009년. 박유천-김재중-김준수의 SM엔터테인먼트 탈퇴와 동방신기의 와해는 그해 연예계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 산업의 폐해가 드러났다. 천상계에 머무르는 줄 알았던 ‘우리 오빠’들이 알고 보니, 비정규직 노동자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80만 회원수을 자랑하는 카시오페아(동방신기 팬클럽)는 분노했다.

그들을 더욱 슬프게 한 것은 ‘우리 오빠’들의 내부갈등이었다. 팀 내 갈등이 하나 둘 수면위로 떠오르자, 카시오페아는 세 가지 길로 분열됐다. 카시오페아를 완전히 떠나거나, 남아서 2인조가 된 동방신기를 응원하거나, JYJ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뭉친 3명의 오빠들에게로 편입됐다.

동방신기 탈퇴 후, JYJ의 앞길은 녹록치 않았다. 그들이 가는 길에 방송금지가 따라붙었다. 생방송 녹화를 직전에 두고 출연이 취소되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 누구도 그들이 TV에 출연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답해주지 못했다. 거대 기획사 SM과 방송사간의 역학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뿐.

외부로부터의 위기는 내부결속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팀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각종 진통을 겪으며 JYJ 팬들은 더욱 견고해졌다. ‘우리 오빠’를 지키고 싶은 그들의 마음은 ‘부조리한 시스템을 바꾸는 움직임’과 ‘잘못된 아이돌 계약 관행 바꾸기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일명 ‘JYJ법’(방송사업자가 제3자의 요청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인의 방송프로그램 출연을 막는 행위를 금지)이라 불리는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의회를 통과했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표준전속계약서가 마련됐다. 팬덤의 승리였다. 팬덤이 일군 기적이었다. 팬이 잘못된 법을 바꿀 수도 있음을 증명한 엄청난 시간이기도 했다.

# JYJ→JJ+Y, 팬덤의 2차 분열?

▲그룹 JYJ 박유천(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위기를 함께 해 준 팬들 덕분에 JYJ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JYJ로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개인 활동의 시간을 늘려갔는데, 이것이 또 흥미로운 결과를 안겼다. 김준수는 매진을 부르는 뮤지컬 배우로, 김재중과 박유천은 연기자로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 박유천은 충무로가 가장 주목하는 배우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멤버별로 팬덤이 갈리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DC)’에 멤버별 게시판이 생겨났고, 팬들은 각자가 지지하는 오빠의 스케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팬들 나름의 깨달음도 크게 작용했다. 동방신기의 와해를 몸소 체험하고, 더 멀리 HOT, 젝스키스의 해체를 지켜본 이들은 ‘함께 영원하자는 오빠들의 약속’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유리 같은 것임을 직감했다. 팬덤의 개인화는 허점을 드러낸 아이돌 산업 구조 속에서 팬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유천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후, DC JYJ 갤러리에서 ‘박유천 지지철회’ 공식입장이 예상보다 빠르고 또 확고했던 나온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없지 않다. 어쩌면 해당 공식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박유천 배척’이 아니라, ‘김재중과 김준수를 지켜내겠다’는 어떤 의지일지도. 실제로 해당 공식입장이 발표된 이후 JYJ 팬덤의 개인화는 보다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금의 DC JYJ 갤러리는, JYJ 갤러리라기보다 JJ 갤러리에 가까운 기분도 든다.

그랬을 때 역시 걸리는 건, 박유천 개인 갤러리에 남은 어떤 이들이다. 동방신기 팬으로 시작해, JYJ 팬덤 안에서 박유천이라는 사람을 가장 지지하는/지자했던 팬들. 과연 박유천의 팬으로 살아왔다는 건, 혹은 앞으로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시 박유천을 말을 생각한다. “(팬들에게) 묻고 싶죠.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니?’라고.” 만약 박유천이 지금의 사건에 대해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면, 그 첫 사과는 자신을 응원해 준 팬들을 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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