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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썰] '막영애' 박형욱 성우 "목소리로 표현하는 예술, 감동주고 싶다"
입력 2017-01-31 08:39   

▲성우 박형욱(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스타가 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정갈하게 차린 밥상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밥상을 차렸던 사람들이 있기에 빛나는 작품, 빛나는 스타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즈엔터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화요일 ‘현장人사이드’에서 전한다. ‘현장人사이드’에는 3개의 서브 테마가 있다. 음악은 ‘音:사이드’, 방송은 ‘프로듀:썰’, 영화는 ‘Film:人’으로 각각 소개한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에게 듣는 엔터ㆍ문화 이야기.

성우는 늘 목소리로 변신한다. 드라마, 다큐,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캐릭터에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시켜 생명력을 얻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의 목소리다”라고 말하는 경력 24년차의 베테랑 성우 박형욱 역시 다양한 표현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1994년 KBS 24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박형욱은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로 21년 동안 활동했다. 또 ‘TV는 사랑을 싣고’ ‘우리말 겨루기’에서도 활약했고, 지하철 안내 방송 목소리로도 익숙하다.

특히, 케이블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내레이션을 맡아 편안한 목소리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으며 첫 방송이 된 2007년부터 15번째 시즌까지 줄곧 함께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영애의 고군분투를 알리는 박형욱 성우의 정감 있는 목소리는 드라마의 관심을 높이는 필수요소가 됐다.

Q: 겨울철, 감기 걸리기 쉬운데 목관리가 필수적이겠어요.
박형욱:
성우로 10년 정도 일했을 때 역류성 인후두염으로 잠깐 목소리를 잃었어요. 긴 시간은 아니었고, 약 먹고 잘 쉬면 나을 수 있는 증상이었지만 말도 하고 표현하는 직업이다 보니 불안하고 초조했어요. 그 전까지는 목은 당연히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마구 다루었거든요. 목소리의 소중함을 모르고 무리하게 쓴거죠. 그 때를 계기를 처음 목에 대해 공부하고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Q: 성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박형욱:
성우가 되기 전 3년간 리포터, 작가로 일을 했어요. 그 당시 성우, 아나운서 공채시험이 있었는데 좀 더 전문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고 싶어 시험을 봤어요. 그동안 방송을 했왔던 터라 마이크가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성우일을 할 때 마이크를 의식하지 않는 편이에요. 마이크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연기가 되어버리거든요. 부담을 느끼면 그만큼 자기 역량 발휘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성우 박형욱(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막연한 관심으로 입문한 세계, 성우가 되고 나서 점차 매력을 알게 되신 건가요
박형욱:
사실 처음부터 성우에 대해 잘 알았던 건 아니에요. 한 달 여 간의 연수를 받고, 본격 성우 활동을 해야 할 때 자신이 없어서 그만두려고 했어요. 제 실력이 드러날까 겁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인사를 드리려고 성우실 문을 열었는데, 반겨주시는 선배님들의 모든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선배님들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스컬리, 멀더, 사오정 등 제가 들었던 캐릭터들이 한 순간에 펼쳐지더라고요. ‘성우라는 직업이 이토록 매력적이구나’라는 걸 문득 깨달았죠. 온전히 사운드만으로 희로애락,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하잖아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표현한다는 본질적인 매력을 알고 나서 감동을 받았어요.

Q: 아무리 오랜 시간 일을 해도, 그 본질적인 매력을 깨닫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 시간이 성우로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네요.
박형욱:
그렇죠. 24년간 성우로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까요(웃음). 일을 하면서도 맨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성우란 직업의 매력을 온 몸으로 느끼며 생경한 충격을 받았던 그 때로요. 성우란 직업의 본질과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기점이에요. 그 이후로 일하는 게 늘 신기하고 재밌었던 것 같아요. 보고 배우려는 마음이 늘 열려있었어요.

Q: 방송을 하는 마음가짐부터 긍정적이시네요.
박형욱: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게 첫 큐를 준 프로듀서들도 많이 만났어요. 농담 삼아 ‘내게 첫 큐 준 사람들은 다 잘 된다'고 말했어요. 긴장감을 덜고 기분이라도 좋을 수 있게요. 지금은 정말 다들 높은 직급을 달고 있어요. 물론 100% 본인들의 노력이고, 자력으로 성장한 것이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거죠.

Q: 성우들은 작품마다 다른 목소리잖아요. 톤을 잡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박형욱:
100% 작품에 기인해요. 성우가 첫 시청자라고 생각해요. 코믹 작품이라면 그 분위기를 따라가려고 하고, 예능, 교양, 시사다큐 등 작품의 주제에 따라 속도, 호흡, 톤, 감정 등이 달라져요.

Q: ‘막영애’하면 떠오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이 내레이션을 처음 준비할 때는 어땠나요.
박형욱:
처음에 내레이션을 하는 드라마가 있다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예전 KBS 드라마에도 그런 형태가 있었어요. 특히 역사드라마에 내레이션 다큐가 삽입되는 경우처럼. 처음 들어갔는데, MBC ‘남자셋 여자셋’ 출신의 재기발랄한 작가진이 와서 재밌더라고요.

Q: 기존 다큐와 교양프로그램에서의 표현법과는 달랐을 텐데, ‘막영애’ 내레이션 톤을 잡기위한 노력이 있었나요?
박형욱:
그럼요. 내레이션 톤을 잡는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능 버전으로 갈지, 아주 감정 없이 컴퓨터처럼 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낮은 톤으로 해서 제 3자가 바라보는 식으로 해야 할지 혹은 직접 하나의 인물처럼 보이도록 할 것인지를 두고 여러 번 녹음을 했어요. 정말 다양한 관점이 있었는데, 예능드라마지만 중심을 잡는 관점으로 가장 낮은 지금의 진중한 톤으로 결정되었죠.

▲성우 박형욱(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막영애’ 내레이션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나요.
박형욱:
성우 관련 책을 쓰고 나서, 지금은 성우의 표현법과 용어 정리 작업하고 있어요. 제가 성우로서 많은 혜택을 받고, 사랑과 관심을 받은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하는 분야에 대한 용어 만들기부터 시작하게 됐죠. 내레이션 종류 파트를 만들고 있는데, ‘막영애’는 ‘캐릭터 내레이션’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요즘엔 연예인들도 내레이션에 많이 나서고 있어요. 전문성을 갖춘 성우로서 이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궁금해요.
박형욱:
비성우들은 이야기체 내레이션이라 각광받는 것 같아요.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장점이죠. 성우들은 발성, 발음, 호흡 등이 훈련된 사람이잖아요. 이 장르가 많은 이들에게 열려있기는 해야 해요. 아나운서는 정확한 전달이 가능하고, 가수, 연기자는 감정적으로 충만하니까요. 직업별로 개성이 다양하니까 좀 더 풍성한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Q: 하지만 성우들의 영역 활동이 줄어드는 부분을 생각한다면, 마냥 환영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박형욱:
위기는 늘 기회이기도 해요. 성우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내레이션이 있어요. 발성, 발음 호흡 같은 발현 능력과 국어소양을 갖추고 있죠. 제가 생각하는 성우는 목소리로 표현하는 예술가예요. 예술가라면 당연히 퍼포먼스로 감동을 주는 게 중요해요. 성우는 다섯 살 아이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다섯 살 아이를 표현하는 직업이에요.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면 공감을 나눌 수 있고 그런 표현 능력을 갖춘다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성우님도 ‘막영애’ 시즌1부터 함께했어요. 원년멤버로서 최장수 프로그램이 된 인기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박형욱:
실제로 존재하지만, 아무도 드라마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을 ‘막영애’는 했어요. 예를 들어 여자주인공이 다리털을 깎고, 뱃살을 숨기려는 행동을 그대로 표현했잖아요. 진짜 내 주위에 있을 법한 여주인공과 직장인들이 시청자들의 공감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제가 영애(김현숙 분)씨한테 항상 얘기를 하죠. 자기는 김태희, 전지현도 못 한 쾌거를 이루고 있는 거라고요. 한 드라마를 10년 동안 주인공을 하는 건 대단해요. 대한민국 드라마상 대단한 역사 같아요. 그렇게 시청자들과 정이 들게 된 거죠.

Q: 그동안 ‘막영애’ 캐릭터들을 지켜봤기에, 더욱 남다른 감정이 있을 것 같아요.
박형욱:
집에서는 혁규(고세원 분), 회사에서는 서현(윤서현 분)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봐요. 원년 멤버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웃긴 캐릭터들이에요. 이들이 다른 곳에서는 멋있는 연기도 하는데, ‘막영애’만 오면 망가지잖아요. 라미란 씨도 지상파 주연으로 활약하는데, ‘막영애’와의 의리를 계속 보여줬어요. 드라마와 함께 같이 성장해준 고마운 배우들이죠.

▲성우 박형욱(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이번 시즌이었던 ‘막돼먹은 영애씨 15’가 최고시청률을 찍었잖아요.
박형욱:
정말 기쁜 일이죠. 다함께 종방연에서 마지막회를 봤어요. 출연한 사람들이 다 앉아있으니까 본인들이 화면에 나올 때마다 인사하고 박수치고 그랬어요. 분위기가 굉장히 즐겁고 유쾌하죠. 그런 기운이 작품에 담기는 것 같아요.

Q: ‘막영애’도 계속될 것이고, 현재 한국예술원에서 후배양성에도 힘쓰시고 계시죠. 앞으로의 성우 인생은 어떻게 그리고 계신가요?
박형욱:
배우 뿐 아니라 성우도 캐스팅을 받는 기다리는 직업이에요. 준비를 해야 하는 거죠. 전 수첩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어요. 올해는 수첩에 가장 처음 ‘나아감’이라고 썼어요. 방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한발이라도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Q: 성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박형욱:
왜 원하는지, 진짜 절실한지를 생각한다면 아마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지금보면 연기에 대한 소신이 뚜렷한 분들이 오래 남아 계세요. 성우가 정말하고 싶은지 심사숙고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성우 박형욱(사진=윤예진 기자 yoo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