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이요? 소년 같은 이미지는 진작에 아니었는 걸요. 하하."
배우 강동원은 늙지 않는 것 같다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체력적으로나 외모적으로 세월을 피하지 못했다는 그의 설명이었다.
조금씩 나이 들고 있다고 하지만, 강동원은 항상 새로워 보인다. 그가 배우로서 뿜어내고 있는 에너지가 늘 신선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내공이 얼굴에 드러나고, 관객들은 그 얼굴을 바라보며 언제나 새로움을 느낀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설계자'(제공/배급: NEW)에서 강동원은 어둡고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강동원은 "내가 봐도 새로운 얼굴"이라며 "관객들이 그 얼굴로 표현한 깊이 있는 분노를 느끼고 놀라주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영화 '설계자'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강동원)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강동원이 '설계자'를 선택한 이유는 시나리오의 독특한 콘셉트 때문이었다. 그는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 청부업자라는 콘셉트 자체가 흥미로웠다며, '설계자'가 다른 범죄 드라마와 달리 주인공 영일의 심리 변화에 집중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신선했다고 밝혔다.
"경계성 인격 장애도 있고, 소시오패스적 성향도 있는 그런 캐릭터가 뭐가 진실인지 믿지 못하면서 점점 미쳐가는 그 과정이 매력적이더라고요. 믿을 만한 사람을 자기 옆에 두려고 가스라이팅도 서슴지 않는 캐릭터인 영일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전 영일이처럼 냉정한 편은 아니거든요."
강동원은 '설계자'의 재미 포인트로 영화 중반 이후 몰아치는 긴장감을 꼽았다. 주영선(정은채)의 의뢰를 완수한 뒤 자신에게 사고가 벌어지고, 이후 자신을 제거하려는 '청소부'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과정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시사회 당일 이요섭 감독이 영화는 안 보고 저를 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영화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나 봐요. 전 촬영이나 음악 모두 좋았거든요. 특히 주성직(김홍파)을 처리하려고 했던 실행일에 비가 오고, 사건이 발생한 뒤 영일이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그 과정들이 극적으로 보여서 좋았어요. 영일의 표정 때문에 더 긴장감이 유발되기도 했고요."
강동원은 2003년 데뷔해 어느덧 22년 차 배우가 됐다. 현장이 어색했던 20대 신인 배우는 동료 배우들과 때론 살갑게 농담을 나누고, 때론 진지하게 작품을 논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선 배우 이미숙과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강동원은 '선배'보단 '친구' 같았던 배우라고 이미숙을 표현했다.
"이미숙 선배가 혼자 차 안에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아우라에 감탄한 적이 있어요. 후배들에게도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더라고요. 월천(이현욱)은 아직도 언니라고 불러요. 하하."
강동원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유독 신인 감독들과 호흡을 맞춘 적이 많다. '택시운전사'의 장훈 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파묘'의 장재현 감독은 각각 '의형제', '가려진 시간', '검은 사제들'에서 강동원과 연을 맺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강동원은 "의욕적이고, 욕심이 많은 신인 감독들과 작업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요섭 감독은 '설계자'가 두 번째 연출작인 신인 감독이다. 강동원은 이 감독의 장점으로 섬세함과 선한 성격을 꼽으며 "덕분에 즐겁게 촬영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감독들이 모두 성공한 감독이 됐듯이 이요섭 감독 또한 "다음 작품이나 다다음 작품에서 1000만 흥행을 하지 않을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강동원은 올해 넷플릭스 영화 '전, 란'과 내년 공개 예정인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북극성'으로 대중들과 계속해서 만날 예정이다. 특히 '북극성'은 강동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제작사 스튜디오AA에서 공동 제작하는 작품으로, 그는 배우이자 제작자로 '북극성'에 이름을 올린다. 강동원은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제작에 참여하는 일이 즐겁다며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영화가 좋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과정이 장난감을 조립하는 느낌과 비슷하거든요. 많은 사람이 모여 한 컷, 한 컷 붙이면서 함께 상상했던 장면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해 가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앞으로 세태나 유행을 따르기보단 시대를 초월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출연하거나 제작한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도 좋은 영화로 남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