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볼버'(제공/배급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약속에 관한 이야기다. 극 중 주인공 하수영에게도, 그를 연기한 배우 전도연에게도 말이다.
전도연은 2015년 영화 '무뢰한'으로 인연을 맺었던 오승욱 감독과 다시 만났다. 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좋아했던 전도연은 2020년 오 감독을 만나 그에게 밝고 통쾌한 저예산 영화를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오 감독은 전도연을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그렇게 나온 영화가 바로 '리볼버'다.
'리볼버'는 비리에 얽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경찰 하수영(전도연)이 출소 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들을 찾아가 대가를 돌려받기 위해 나서는 영화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전도연은 "솔직히 안 하고 싶었다"라고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시나리오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린데다가, 밝고 통쾌한 무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전도연은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로 겨우 밝은 이미지로 돌려놨는데, 다시 어두운 작품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도연은 자신을 위해 쓴 시나리오를 외면하지 않았고,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던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리볼버'에 출연했다.
Q.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당황스러웠다. 시사회 때 영화를 보니 블랙코미디더라. 촬영할 땐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영화인지 몰랐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땐 여자 버전 '무뢰한' 같은 느낌이 들어 조심스러웠다. 특히 오승욱 감독의 전작을 같이 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됐다.
Q. '무뢰한'과 다르게 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오 감독은 아니라고 했지만, '무뢰한'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좀 건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하수영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많이 걷어내고자 했다. 그런데 촬영할 때 수영이 너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같은 연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만 같았고. 그래서 '이거 지루하지 않아요?' 계속 확인했다. 다행히 촬영할 땐 몰랐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니 배우들의 다양한 색이 느껴져 작품이 다채롭게 나온 것 같다.
Q. 하수영은 대사도 많지 않다.
하수영은 똑같은 이야기만 계속 무표정하게 반복한다. 그래서 연기할 때 지루하게 느낀 것 같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색을 입히고, 혼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지 않았다면 보기 힘든 영화가 됐을 것이다. 배우들의 에너지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오승욱 감독과 두 번째 작품을 같이 해보니 어땠는가?
'무뢰한' 때는 감독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땐 좀 힘들었다. 글이 날카롭다고 생각했고, 그게 좋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타협을 많이 하더라. 그래서 촬영하며 '본인이 쓴 글 맞아요?' 그랬었다. 온전히 감독을 이해하지 못하고 촬영했던 것이 '무뢰한'이었다. 이번엔 감독이 원하는 걸 다 표현하고 싶었다. 또 언제 같이 작품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 할 수 있을 때 다 해보고 싶었다. 하하.
Q. 이정재가 특별 출연으로 등장한다.
그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왜 이걸 한다고 했지?' 그 생각부터 했다. 하하. 아마도 오승욱 감독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Q.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갈증은 풀었는지?
솔직히 '리볼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 말고 누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길복순'으로 액션도 했고, '일타스캔들'을 하며 어렵게 밝은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리볼버'를 하면 다시 내 발로 무덤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하. 오승욱 감독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왕 하는 것 잘하고 싶었다.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연극 '벚꽃동산'으로 조금 풀었다.
Q. '벚꽃동산'으로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등 '열일'을 하고 있다.
배우가 연기를 한다고 '작품 갈증'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벚꽃동산'을 하기 전 27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에 서려니 무섭기도 하고, 자신감도 없고, 두려움도 컸다. 27년 만이면 사실상 신인이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들을 이겨내 보려 '벚꽃동산'을 했다. '벚꽃동산' 이후 무대를 좀 더 사랑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가 더 하게 될지 두려워하지 말자며 시작한 것이다.
Q. 정윤선 역의 임지연은 어떤 배우였나?
교도소 문밖에서 정윤선이 차에서 내리는데, 무채색 영화에 색이 칠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첫 장면에서 정윤선이 어떤 인물인지 알 것 같았다. 임지연과는 각자 역할에 집중했고, 임지연이 정윤선 역할을 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예종 전도연'이었다는 것, 내 팬이었다는 것도 '핑계고'에 출연해서 알았다. 영화 끝날 땐 몰랐는데, 재미있고 귀여운 친구더라.
Q. 앤디 역의 지창욱은 어땠나?
지창욱은 대본에 없는 캐릭터를 만든 것 같다. 대본에는 앤디에 특별함이 없었다. 지창욱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욕을 너무 많이 해서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니 조용히 매니저가 다가와 '전작에서 많이 해서 괜찮다'고 하더라. 하하.
Q. 직접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내가 잘하는 건 연기다. 나머지는 자신이 없다. 실패할까 봐 무섭다. 실패하면 두 번 다시 꿈을 못 꿀 것 같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긴 있다. 멜로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게 오래된 것 같다. 요즘엔 멜로에 관심이 없다고 하던데, 좋은 멜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출연을 하든 안 하든.
Q. 전도연의 연기 인생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어떤 평가를 내리고 싶은가?
타협하지 않고, 전도연 같이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나는 내가 쌓은 필모그래피가 자랑스럽다. 모든 작품들이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한테 회자 되고, 언제 다시 보더라도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이었어?'하는 것들을 찍어온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에 누가 되지 않는 작품들을 앞으로 채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