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걱정이 컸어요. '내가 정말 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지난달 26일 종영한 드라마 JTBC '옥씨부인전'에서 하율리는 김소혜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악랄한 표정, 표독스러운 말투로 구덕이(임지연)를 위기에 몰아넣으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설득력 있게 악역 김소혜를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비즈엔터를 찾은 배우 하율리는 제작진 덕분에 불안을 말끔하게 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대본을 처음 읽던 날, 하율리는 진혁 감독, 박지숙 작가가 "넌 소혜야"라고 용기를 불어 넣어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자신감을 되찾은 하율리는 소혜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온 인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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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혜는 구덕이를 마지막 순간까지 몰아붙였던 존재였다. 가차 없는 폭언과 조롱, 끝없는 괴롭힘에 시청자들은 임지연이 연기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박연진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하율리는 그저 감정을 쏟아붓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악을 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씩 조용히 호흡을 눌러 대사하려고 했어요. 만약 소혜가 무작정 소리만 지르는 캐릭터였으면 재미없었을 걸요? 하하. 분노할 땐 확실히 분노하고,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땐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율리는 김소혜의 여러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신으로 두 장면을 꼽았다. 먼저 15화 말미 구덕이를 잡아들인 소혜가 그와 헛간에서 단둘이 대립하는 장면이었다. 하율리는 이 장면을 소혜와 구덕이가 각자의 처지에서 필사적으로 대립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감정이 정점에 치달은 장면이었어요. 아마 시청자들도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걸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저도 더 신경을 많이 썼고, 임지연 선배도 촬영 전 '한번 미리 맞춰보자'라고 하면서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하율리가 꼽은 소혜의 또 다른 명장면은 12화 엔딩에서 옥태영(임지연)으로 살던 구덕이와 우연히 마주치고 웃는 장면이었다. 많은 시청자가 소혜의 광기 어린 웃음에 '소름 끼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하율리는 "너무 더웠던 날이라 빨리 찍고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라며, 구덕이를 향한 소혜의 집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신나서 웃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역을 맡은 배우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때리는 연기가 맞는 연기보다 더 어렵다. 하율리도 이번에 그 어려움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1회에서 소혜는 노비 구덕이를 멍석으로 말고 구타하는, 일명 '멍석말이'를 한다. 하율리는 집에서 인형을 이불로 감싸고 때리는 연습을 했었는데, 연습과 실제는 차원이 달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연 선배가 바닥에서 펑펑 우시는데, 그걸 보면서 괴롭혀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진짜로 때려야 한다고 말해서 더는 망설일 수 없었죠. 감정도 많이 소모되더라고요. 그런 날은 집으로 돌아가 귀여운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영화 보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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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씨부인전'은 하율리가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하율리는 앞서 MBC '옷소매 붉은 끝동', 넷플릭스 '피라미드 게임'을 통해 그가 맡은 역할이 잠시 화제를 모았던 적은 있었지만, 배우 하율리에게 많은 시청자가 큰 관심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구덕이 좀 그만 괴롭히세요'라는 인스타 DM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정말 진지하시더라고요. 내 연기를 이렇게 생생하게 받아들여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신기하면서도 기쁘더라고요. '옥씨부인전'은 하율리와 김소혜라는 이름을 시청자들이 불러줬던 작품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강렬한 악역으로 자신을 대중에 각인시킨 하율리는 따뜻한 감정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엔 힐링 드라마로 시청자 앞에 서고 싶어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작품이요."
②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