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아침에 이런 관심을 받으니 얼떨떨하더라고요."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학씨' 부상길(최대훈)의 부인 영란이 공개되고 채서안의 인스타그램에는 DM이 쏟아졌다. 또 휴대폰엔 방송 관계자들의 전화번호가 찍혔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채서안의 연기는 대중의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아직 채서안이라는 이름보다 '학씨 부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채서안은 단 몇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에 흔적을 남긴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비즈엔터에서 채서안을 만났다. 채서안은 오애순(아이유)과 양관식(박보검)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폭싹 속았수다'에서 부상길 부인 영란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다. 그는 주인공 애순의 청년 시절에 등장하는 '학씨 아저씨'의 젊은 아내이자 참한 표정과 절제된 말투 뒤 꾹꾹 감정을 눌러놓은 여성이었다.
"감독님과 작가님은 영란이 '참한 사람'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저는 그 참함 속에서 영란만의 강단을 보여주고자 했죠."

극 중 영란은 단아하고 조용하게 애순과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가다 남편을 욕하는 그 순간, 눌러놨던 감정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후 딸 현숙이에게 "너는 똥 밟지 말고 꼭 이 집 아저씨 같은 사람한테 시집가라"라고 털어놓는다. 영란의 자조적인 대사가 전한 여운은 굉장히 길었다. 채서안은 "짧은 호흡 안에 감정을 모두 담아둬야 했기에 평소보다 많은 준비를 했다"라고 말했다.
영란은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 관식과 함께 청년 역과 장년 역이 구분된 배역이었다. 2인 1역을 해야 하는 만큼 '연결'이 중요했다. 채서안은 김원석 감독의 주도로 장년 영란을 연기한 배우 장혜진과 촬영 전 직접 만나 대사를 함께 읽고 영란의 캐릭터를 맞췄다.
"혜진 선배님이 저를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먼저 대사를 읽어주시고 녹음까지 해서 전달해주셨어요. 저한텐 너무나도 큰 배려였고, 덕분에 훨씬 편하게 영란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요'라며 격려도 해주셨는데,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대사 한 줄, 걸음걸이 하나도 민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여러 감정과 동선을 미리 그려왔지만, 실제 현장에선 예기치 않은 요소가 많았다. 머리핀이라는 상징적 소품을 매만지며 감정을 끌어올려야 했고 아역들의 동선까지 신경 써야 했다. 여기에 영란을 바라보는 애순의 감정, 그 시선까지 생각하려니 과부하가 걸렸다.
"현장에서 감정이 너무 많이 겹치더라고요. '내가 잘하고 있나?'란 생각이 드는 순간, 연기 톤이 흔들리더라고요. 그런데 촬영을 마친 뒤 어느 날, 아이유 선배님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줬어요. 우린 정말 좋은 스태프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으니 현장에서 더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해줬어요. 후배로서 너무 힘이 됐고 말 그대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어요."

그 메시지 이후로는 현장이 조금씩 달리 보였다.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호흡에 맞춰야만 한다는 걱정, 불안은 줄어들었다. 아이유의 따뜻한 시선은 후배 배우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배려였다. 채서안은 그 문자를 지금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②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