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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의 음악본능] 술이란 뮤즈의 또 다른 이름
입력 2017-05-24 10:02   

라디오 방송 출연을 할 때, 특히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이런저런 자랑을 많이 하는 편이다. “LP를 무지 샀다”거나, “지난 주 저는 역시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습니다.”라고 발언하면 배철수 DJ가 “음악 평론가가 그런 게 당연한 거지, 뭔 그게 자랑거리냐”라며 핀잔을 주는 식이다. 한번 두번 이런 식으로 재밌게 자랑해보려 했던 게 어느덧 패턴으로 굳어졌고,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오늘도 나는 자랑질에 여념이 없다. 이런 걸 예능에서는 캐릭터 싸움이라고 부른다지 아마. 그러나 오해 마시길. 주변에 물어보면 알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겸손한 사람으로, “내 글은 언제나 왜 이 모양일까”, 자괴감을 느끼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동시에 그간 내가 들었던 음악들과 읽었던 책들, 어떻게든 글을 잘 써보려 했던 노력 등에 약간의 자부심 정도는 갖고 있는데, 나는 이게 전혀 양립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두 가지를 함께 갖춘 사람이야말로 좋은 평론가가 될 자질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하는 편이다. 간단하게, 자신감과 겸손의 동시공재라고 할까.

최근 이 둘 중 나에게 다시 한번 겸손의 미덕을 일깨워주는 책을 만났다. 일단 제목부터 살펴본다.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이라는 타이틀을 두르고 있는 이 책에는 두 가지 부제가 붙어있다. 하나는 “팝 스타들의 음악과 인생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술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의 술 사용법”이다. 정리하자면, 팝 스타들이 어떤 술을 좋아했고, 그 술과 함께 어떤 에피소드를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음악에 어떻게 녹여냈는지를 쓴 책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점은 크게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이토록 많았다는 것, 둘째는 이 이야기들을 재밌게 요리하는 저자의 글솜씨였다. 전자의 경우, 읽고 배우면 되니까 크게 문제될 일은 없다. 어차피 비평가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니까 말이다.

진짜 충격은 그러니까, 후자였다. 저자인 조승원씨의 글솜씨에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의 경력을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는 방송국 기자다. 동시에 소문난 음악광이자 미주가(美酒家)이기도 하다. 심지어 술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국가 공인 조주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음악 바 같은 곳에서 그를 만난다면, 음악이나 술 갖고 아는 척은 왠만하면 하지 말기를 바란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과연, 그의 커리어 그대로 책에는 득템해야 할 정보(기자)가 빼곡하고, 음악이 가득하며, 술의 향기가 그 위를 그윽하게 맴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끝내준다. 기실 뮤지션들을 포함한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술이란 뮤즈의 다른 이름 아니겠나. 그들이 술을 통해 어떻게 위로 받고, 창조의 격려를 얻었으며, 자신의 절망을 가려버렸는지, 이 책을 통해 흥미롭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고르자면 저자의 서문과 레이디 가가(Lady Gaga)와 비틀스(The Beatles), 그리고 오아시스(Oasis)의 갤러거(Gallagher) 형제 편을 강추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음악이 고프고 술 한잔이 간절해질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도처에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