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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혹성탈출: 종의 전쟁’ 시저, 덕분에 황홀하고 행복했다
입력 2017-08-15 15:13    수정 2017-08-15 15:26

(사진=영화 ‘혹성탈출 : 종의 전쟁’ 포스터)

1968년 지구에 도착한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은 걸작이었다. 인간이 유인원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은 충격적이었고, ‘주인공이 그토록 벗어나려했던 혹성이 알고 보니 지구였더라’는 결말은 소름 돋았다. 이후 많은 속편들이 원작의 영광을 재현하려 리부트에 뛰어들었지만, 그 누구도 원작 ‘혹성탈출’을 탈출하는데 실패했다. 원작의 벽은 너무 견고했음으로.

팀 버튼(2001)마저 실패한 <‘혹성탈출’ 리부트 잔혹사>를 끊어낸 건 루퍼트 와이어트다. 2012년 나온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원작의 정통을 계승한 가운데, 새로운 시리즈로의 가능성을 가득 뿜어댔다. 오리지널에 버금가는 걸작.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의 이름을 딴 주인공 시저(앤디 서키스)를 보며 많은 이들이 이렇게 외쳤다. “왔노라! 보았노라! 반했노라!”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과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에 이은 ‘혹성탈출’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솔직히 루퍼트 와이어트가 하차하고 맷 리브스가 메가폰을 잡은 2편 ‘반격의 서막’은 1편과 비교해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물이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맷 리브스가 다시 맡는다고 했을 때 살짝 아쉬웠던 이유. 그런데 맷 리브스에서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편의 아쉬움을 지워내는 동시에 ‘혹성탈출’ 시리즈를 다시 또 살려낸다. 그러니까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리부트 3부작의 장엄한 마무리이자, 1968년 오리지널로 수렴되는 영리한 징검다리이고, 그 자체로 뛰어난 대서사다.

1편을 본 이들이라면, 샌프란시스코 젠시스 제약사 실험실에서 탄생한 일명 유인원 바이러스 ‘시미안 플루’를 기억할 것이다. 생명력이 질긴 바이러스다. 유인원에게 비상을 지능을 안겼던 이 바이러스가 이번엔 인간의 지능을 퇴화시킨다. 진화하는 유인원과 퇴화하는 인간. 그러니까 ‘혹성탈출: 종의 전쟁’은 유인원들이 성공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간 실격에 대한 비극의 서사다. 그 중심에 역시 시저가 있다.

진화한 유인원들을 이끌며 자급자족 사회를 만든 시저.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원했던 시저의 바람은 그러나 2편에서 인간들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유인원 코바(토비 캡벨)에 의해 위험에 직면한 바 있다. 3편에서 시저를 괴롭히는 건 세상을 떠난 코바라는 유령이다. 인간에게 가족을 잃은 시저는 자신 안에서 코바의 모습을 발견하다. 아니, 어쩌면 인간에게 잡혀 갖가지 실험을 당한 후 인간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적대감에 사로잡혔던 코바를 뒤늦게야 이해하게 된 것인지 모른다. 유인원을 통솔해야 하는 리더라는 자리와, 가족을 잃은 아비로서의 사적 복수심 사이에서 시저는 ‘햄릿’과 다름 아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 대단한 것은 그런 시저의 다층적인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구현돼 있다는 점이다. 더 유려해진 테크놀로지가 연신 탄성을 자아내는 가운데, 깊어진 캐릭터 내면의 고뇌와 파고가 묵직함을 안긴다. ‘인간이 왜 유인원의 종으로 살아가게 됐는가’ ‘인간의 언어는 왜 사라졌는가’ 오리지널에 대한 열쇠 또한 이 영화에 있다.

그리고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앤디 서키스의 연기다. 영화에서 시저를 바라보는 심정은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의 그것과 흡사하다. 인간에게만 가능하다 생각했던 ‘감정적인 공명’을 디지털 캐릭터에게 느끼게 되는 놀라운 경험. 이는 디지털 캐릭터의 표정과 제스처를 ‘디지털 기술’ 덕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퍼포먼스 캡처 연기를 해낸 배우에게 그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라는 질긴 논쟁을 던져왔는데, 그 물음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그럼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더 탁월해진 기술을 최정상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건 앤디 서키스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말해도 지겹지 않다. 앤디 서키스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수여하라!

여러모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는 원작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될 명작이다. ‘혹성탈출’을 레퍼런스 삼아 속편을 제작해 온 영화들에게, 새로운 ‘레퍼런스’가 나타난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