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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영 칼럼] 드라마에도 나오는 '졸혼', 혼인과 이혼 사이
입력 2017-08-16 15:42    수정 2017-08-16 16:22

▲백일섭(사진제공=KBS)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강석우는 졸혼을 선언하고, ‘살림하는 남자2’에서 백일섭은 졸혼을 만끽한다. ‘MBC 스페셜’에서 방송인 윤영미는 한달 동안 졸혼을 체험하기도 했다. 졸혼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의 영향 때문인지, 최근 졸혼에 대한 문의가 늘었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시대’를 출간하며 등장한 단어 졸혼이란, 말 그대로 “혼인관계를 졸업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이혼과 달리 법적인 부부관계는 유지하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간섭하지 않으며 각자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주거 안에서 동거하지만 사생활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아예 다른 장소에서 거주하고 가족의 대소사가 있을 때만 만나기도 한다. 마치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졸혼은 “이혼인 듯, 이혼 아닌, 이혼 같은 너” 같은 형태다.

예전에는 부부가 싸워도 각방을 써서는 안되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는데 그 짐을 내려놓고 오로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증폭되면서, 졸혼은 황혼 이혼에 또 다른 선택이기도 한다.

졸혼은 단어 의미로만 본다면 마치 졸업과 같이, 그간의 모든 과정을 완수한 뒤 주어지는 절차 같기도 하고, 그 자체로 완성을 뜻하기도 한다.

물론 긍정적인 졸혼도 다수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 이혼과 또 다른 부부해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KBS2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캡처)

졸혼을 선언했다는 이유로, 법적인 배우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하거나, 공식적인 애인을 만든 뒤 졸혼을 내세우며 사생활을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등 무늬만 이혼과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즉, 졸혼이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을 함께 산 배우자에 대하여 이혼을 통해 최소한으로 보장해주어야 하는 재산에 대한 권리 등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혼인의 선택이 신중하였듯이 이혼이나 졸혼에 대한 고려도 분명 신중하여야 한다. 범죄행위에 이를 정도의 폭언, 폭행이 있었거나 도저히 견디지 못할 고통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너무 불행하다면 이혼을 택하는 것이 맞고, 그에 따른 권리를 찾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졸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함에 빠져, 관계를 잠시 졸업시켜 둔 뒤 자유를 실컷 누리고, 책임은 다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

함께 결혼을 꿈꾸고, 자녀를 계획하고, 미래설계를 하면서 내가 자라났듯이, 아내와, 가족과 함께한 지난 세월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잠깐의 위기가 왔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처음 혼인에 이르게 된 그 설레임, 행복한 감정, 첫 아이가 출산했을 때의 벅찬 심정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서로 노력해보길 희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행함을 느낌다면 그때는 졸혼이라는, 아무런 권리도 책임도지지 않으려는 방법보다는 “건강한 헤어짐”을 택해서 서로가 가장 덜 다치는 방법으로 헤어지는 것이 평생을 살아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