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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를 기억해’, 피해자 아픔 껴안지 못한 장르적 한계
입력 2018-04-17 13:58   

(사진=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지난해 다양한 아동 청소년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생각보다 잔인한 그들의 행동과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문제점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청와대가 이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강조한 것이 한달 전이다.

‘나를 기억해’는 아동 청소년 범죄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다. 극은 윤리 선생님인 서린(이유영 분)이 학교 책상에 놓인 수면제 든 커피를 마시면서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인물 마스터는 서린이 잠든 사이에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고,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압박한다. 서린은 어쩔 수 없이 마스터의 말을 따른다. 서린뿐만 아니라 제자인 세정(오하늬 분), 또 다른 10대 소녀 민아(김다미 분) 역시 비슷한 수법으로 희생자가 된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기보다 숨거나 혹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성범죄 피해자는 그럴 만하기 때문에 당한다는 주변인들의 폭력적인 시선과 신고를 한다고 해도 얼굴이 알려지는 등 2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를 기억해’는 해결책을 제시하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는 작품이다.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10대 성범죄가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쉽게 벌어지는지 심각성을 느끼게 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영화는 현실과 피해자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이한욱 감독은 영화를 만든 동기에 대해 “처음 생각한 건 청소년의 문제였다.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한서린과 전직 형사 오국철(김희원 분)이 의문의 존재와 마주한 장면이다. 그 장면으로 귀결되기 위해 사건이 만들어졌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피해자인 한서린 입장을 간과하기 어려웠다. 소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간 안배를 해서 두 요소를 잘 녹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사회 문제를 다룬 ‘도가니’ ‘한공주’가 관객의 분노와 눈물을 함께 훔쳐냈던 이유는 ‘드라마’로 섬세하게 이야기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나를 기억해’는 피해자를 염려하기보다는 스릴러 구조에 더 집중한 ‘장르 영화’로 볼 수 있다. 서린, 세정, 민아, 동진(이학주 분) 등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범인인 마스터의 존재도 드러나는 구조를 취하는 만큼 스릴러적 면모가 영화를 이끈다. 피해자가 마스터의 변태적인 요구에 응하는 모습이나 예비 시부모가 메시지를 받는다는 설정 등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 또한 자극적이다. 여기에 여자의 울음소리로 기괴함을 살리고, 반전을 이용해 긴장감과 충격을 동시에 자아낸다.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없는 요소들이다.

(사진=씨네그루키다리이엔티)

특히 제목 ‘나를 기억해’는 “서린 입장에선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고, 범인 입장에서는 스스로를 각인시키는 말이다”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서린과 범인 두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된다. 범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기억하라는 무서운 이야기, 스릴러에 적합한 제목이면서도 두 가지를 같이 생각했다는 점이 불쾌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서린이 정체성을 지킨다는 것은 어떨까. 극중 서린은 사건 이후 자신을 찾게 된다. 서린은 과거와 달리 범인을 신고하고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는다. 서린은 왜 범죄를 겪으면서 성장을 해야 하는 걸까. 범죄를 통해 성장한다는 건 어디서 나오는 생각일까. 특히 과거를 다 지우고 새 인생을 살고 있는 서린에게 또 다른 피해자가 “저는 비겁하게 살지 않으려고요”라고 말하는 부분은 극의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대사로 들린다. “상처를 봉합하는 게 아니라 극복” 하길 원한다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는 말일 뿐이다. 오는 19일 개봉인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