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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대기자의 '스타 메모리'] 신애라와 '꾸러기 카메라'
입력 2022-01-08 12:00   

▲배우 신애라(사진제공=채널A)

'꾸러기 카메라'는 1990년대 초반 SBS TV 예능 프로그램 '초특급 꾸러기 대행진'의 한 코너로 일본 버라이어티 쇼에서 따온 '몰래카메라' 콘셉트로 기획됐다. 먼저 시작한 MBC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의 경쟁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 '꾸러기 카메라'에 출연했다. 그런데 예측 못 한 돌발 상황 때문에 지금까지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사실 '몰래카메라'의 재미는 무대에서 연출된 정제된 이미지가 아니라, 몰래 꾸민 상황 속에서 연예인의 실제 성격과 태도가 드러나는 데 있다.

배우 신애라와 함께 출연한 꾸러기 카메라

신애라는 80년대 말 데뷔 당시 세계적 청춘스타 피비케이츠를 빼닮은 신묘한 외모에, 김수현 극본의 화제작 '사랑이 뭐길래'에서 톡톡 튀는 대사로 한창 떠오르는 신예였다.

방송 담당 기자였던 나는 발 빠르게 신애라를 섭외해 23살(1992년 1월 당시) 청춘 일기 "피비 케이츠를 닮았다구요?"를 신문에 연재했다. 수시로 만나 인터뷰를 하다 보니, 꽤 편안한 관계가 됐다. 깍쟁이 같은 외모와 달리 서글서글하고 소탈한 성격이라 사적인 대화도 많이 나눴던 것 같다.

▲홍성규 대기자가 쓴 신애라의 '스타 스토리'(사진=홍성규 대기자)

'꾸러기 카메라' 이야기는 신애라의 여성 매니저가 내게 전화를 걸어, 흥미로운 제안을 해오면서 시작된다.

SBS '꾸러기 카메라' 제작진에서 '신애라 편'을 기획 중인데, 내용인즉슨, 한 중년의 유명 도예가가 슬하에 애지중지 키우다 잃어버린 딸이 있는데, 신애라와 너무 닮은 것 같다. 꼭 한번 만나고 싶고, 고가의 도자기까지 선물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이 도예가로부터 연락을 받은 홍성규 기자가 그 간절한(?) 사연을 신애라에게 전해, 만남의 현장을 독점 취재한다는 설정이었다.

물론 유명 도예가든, 애절한 사연이든 모두 '몰카'를 위해 연출되는 것이었고, 신애라에게 전화로 연락하는 것부터 현장에서 만나게 하는 것까지 기자 역할 연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신애라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제안을 전달할 때, 엄청 바쁜 신애라가 "스케줄이 안된다"하고 사양해 버리면 시작도 못 해보고 접어야 하는 기획이기도 했다.

매니저는 내게 "신애라가 절대 몰라야 하니 비밀 지켜 달라"면서 신신당부했다. 늘 같이 다니는 매니저이지만, 이 부분만큼은 철석같이 함구하기로 방송국과 약속했다고 했다.

나는 그 다음날 편안한 시간에 신애라의 집으로 전화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애써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어떤 도예가의 사연과 만남에 대한 간절한 기대감을 전했다.

그런데 신애라가 너무도 흔쾌히 "얼마나 딸이 보고 싶겠어요. 그런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가 봐야 겠네요"하고 승낙했다. 당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던 신애라가 너무 쉽게 섭외에 응해서, 싱거웠지만,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어느 날 몇시 홍대 근처에 있었던 도예가의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됐다. 나는 그날 취재 기자 역할로 현장에서 합류, 도예가와 신애라의 만남을 주선하는 약간의 '연기'를 하면 오케이였다.

장소는 홍대 인근 단독 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현관문이 이 있었다. 그런데 그 현관문 계단 밑과 거실 한편에 카메라가 숨어 있었다. 나를 알아 본 제작진이 살짝 눈짓을 하더니, 다시 위장을 했다.

내가 먼저 거실로 들어가서, 가짜 도예가와 초등학생 아들과 가정부 역할을 만났다. 서로 눈을 찡긋했다. 신애라는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실에는 비싸 보이는 도자기가 여러 점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이윽고 신애라가 도착해서 거실로 들어와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도예가는 미리 짜여진 대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잃어버린 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수첩에 받아 적는 척했다. 신애라가 가슴 아파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도예가 아줌마는 신애라에게 선사할 도자기를 갖고 오겠다면서 다른 방으로 갔다.

나의 임무는 이부분까지였다. 나는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 있어서 잠깐 통화하고 오겠다는 핑계로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몰래 대기 중이던 제작진이 나를 반겼다.

이제 그 방에는 신애라 혼자였다. 그런데 각본대로 그 방에 개구장이 아들이 야구 방망이를 흔들며 갑자기 들어왔다. 신애라의 관심을 끌려는 듯 방망이를 흔들거리다, 그만 '홈~런'하고는 힘차게 휘두른 방망이로 도자기를 박살냈다.

소리를 듣고 달려 들어온 도예가 아줌마가 "이걸 어째"하며 혼을 내자, 그 개구쟁이는 "내가 안 그랬어. 이 누나가 깼어"하고 울어 댔다. 신애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줄 몰라했다.

제작진은 이 상황에서 신애라가 당혹스러워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악동같은 꼬마에게 "너 왜 거짓말하니"하며 화를 내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런데 신애라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누가 봐도 개구쟁이 아들이 야구 방망이로 장난치다 고가의 도자기를 깬 것인데, 자신이 도자기를 살펴보다가 떨어뜨린 것이니,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는 것 아닌가.

"이 도자기가 얼마짜린데 어떻게 하느냐"라며 신애라를 더욱 민망하게 만들려고 대사를 준비하던 가짜 도예가 아줌마나, "이 누나가 거짓말한다"라고 계속 악동 연기를 하려던 개구쟁이 아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결국 여기서 꾸러기 카메라가 등장하고, 촬영은 일단락됐다.

며칠 후 제작진은 기대대로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축소 편집해서 1차 방영하고, 부족한 부분은 스튜디오에서 추가 촬영을 한번 더하기로 했다고 전해왔다.

그래서 했던 것이 방청객을 대상으로 한 신애라의 스탠딩 개그였다. 내용은 그 당시 유행했던 ‘입 큰 개구리’스토리였다.

동물 대학의 졸업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데, 늘 큰 입이 콤플렉스였던 개구리가 입을 작기 보이기 위해 '신 도림'을 연습하지만, 막상 사진 찍는 순간에는 '신도림'을 까먹어서 '신대방~'한다는 허무 개그였다. 사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나는 당시 신애라가 혹시 사전에 다 알아채고, 연기를 한 것 아닌가 의구심이 있었지만, 신애라 본인에게든 제작진에 묻지 않았다.

▲배우 신애라(사진제공=tvN)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어떨까. 오늘날 그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살아가는 신애라의 모습에서 그 당시에도 의도된 연기가 아니라, 사실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구김살 없이 잘 자란 신애라의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자연스런 모습이 표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신애라는 차인표와 결혼하고, 부부가 함께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금쪽 같은 내 새끼', '신박한 정리' 등 휴머니즘 가득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숨김없이 리얼다큐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신애라는 데뷔 초기 담당 기자로서 자주 만났지만, 그 이후 출입처가 바뀌면서 거의 만나지를 못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0년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신문사에서 나와서 청담동에 홍보대행사 사무실을 차리고 일할 때였다. 오피스텔 건물 1층 쌀국수집에 갔다가 손님과 함께 온 신애라를 마주쳤다.

나는 "신애라 씨 오랜만입니다. 나 알아보겠느냐"라고 인사를 건넸다. 손님과 식사 중이던 신애라는 꽤 오랜만에 만났지만, "네~ 그럼요. 알 것 같아요"하며 환한 웃음으로 반가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