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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리뷰] 영화 '행복의 나라', 실화의 힘 증폭시킨 조정석ㆍ유재명 그리고 이선균
입력 2024-08-08 12:00   

▲영화 '행복의 나라' 포스터(사진제공=NEW)

'택시운전사'(2017), '1987'(2017), '남산의 부장들'(2020), '서울의 봄'(2023) 등 1970~1980년대 우리나라 격동의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조정석, 유재명, 故이선균 주연의 영화 '행복의 나라'(제공/배급: NEW)다.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행복의 나라'는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사이 벌어진 10.26 재판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은 남다르다. 이 남다른 이야기가 조정석, 유재명, 이선균 등 세 배우를 만나 더 큰 울림을 주는 영화로 탄생했다. 세 사람의 연기 삼중주는 '행복의 나라'를 봐야 하는 이유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사진제공=NEW)

◆ 조정석, 평범한 변호사 그 자체

조정석과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함께 만든 신원호 PD는 그를 두고 '평범함을 지향한다'라고 표현했다. '행복의 나라' 속 정인후는 평범함을 지향하는 조정석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정점의 인물이 아닐까 싶다. '행복의 나라'는 평범함을 지향하는 조정석 특유의 매력이 곳곳에 녹아든 영화다. 야만의 시대였던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하지만, 조정석으로 인해 굉장히 인간적이고 따뜻한 구석이 있다.

정인후는 극 초반 옳고 그름보다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고, 수임료를 버는 것이 중요한 변호사로 그려진다. 쇼맨십이 필요한 변호사가 변호인단에서 그를 스카우트하고, 정인후는 이 사건을 통해 유명세를 얻어보고자 박태주의 변호사가 된다.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했던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을 하루를 집중 조명하며, 신군부의 시작을 무미건조하게 묘사했다. 너무나 차갑게 그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답답 지수'가 차오른다. 자연스럽게 '만약 그날 누군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 현대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한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사진제공=NEW)

'행복의 나라'는 다르다. '행복의 나라'에는 조정석이 있다. 그는 속물이었던 정인후가 점차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불공정한 재판, 군인으로서의 신념, 상관에 대한 신의 등 평소 그가 접해보지 않았던 비상식적인 상황이 그의 심경을 변화하게 한다.

정인후는 마치 바위를 치는 계란처럼 보인다. 깨질 것을 알지만, 혹시 그래도 바위가 갈라지지 않을까 온몸을 던진다. 그의 고군분투를 보다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레 정인후가 된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아무리 대통령을 암살하는 데 가담한 자라도 재판만큼은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나라다. 그런데 세상이 녹록지 않다.

영화 마지막에 정인후는 전상두(유재명)를 향해 울분을 토한다. '미래'를 아는 관객들에겐 감독이 정인후의 입으로, 신군부 최고 권력이었던 자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 등장인물의 대사로 너무나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에 자칫 촌스러워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평범함을 지향하는, 풀뿌리 민중들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조정석이 이 장면을 연기해 진한 울림을 준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사진제공=NEW)

◆ 유재명, 욕망의 화신 그 자체

'행복의 나라'는 태생적으로 '서울의 봄'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봄'과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데다가, '서울의 봄'은 천만 관객을 넘겼으며, 똑같은 인물을 모티브로 한 군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절대 권력을 붙잡기 위해,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는 인물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서울의 봄' 명대사는 폭주 기관차 같은 전두광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사진제공=NEW)

유재명이 연기한 전상두의 온도는 그보다 차갑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기고, 언제든 권력을 사냥하려는 맹수의 느낌이다. 전상두는 박태주의 재판이 불공정하게 돌아가게 하는 흑막으로, 다른 인물들을 향해 그가 비릿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영화의 긴장감은 높아진다.

특히 군인 전상두와 변호사 정인후의 첫 만남은 두고두고 볼 만하다. 이들은 직업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도 서로 다른 사람이다. 현실주의자와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자의 첫 번째 대립은 주먹다짐 하나 없이 오로지 말로만 그려지는데, 유재명의 연기가 상당히 묵직하면서 날카롭다. 출셋길이라고 생각해 박태주의 변론에 뛰어든 정인후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며, 관객들에게 '절대 악' 전상두를 각인시키는 장면이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사진제공=NEW)

◆ 이선균, 그 자체

이선균은 10.26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 대령을 연기한다. 박태주는 상관의 지시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가담했으며, 군인 신분이었기에 피고인 중 홀로 재판을 한 번만 받게 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인 인물이다.

정인후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박태주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여러 묘수를 들고 온다. 하지만 박태주는 군인으로서의 신념과 상관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를 강직하다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굉장히 고지식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 '행복의 나라' 포스터(사진제공=NEW)

이선균은 관객들이 박태주를 다양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 연기했다. 군인으로서의 신념을 드러낼 때도, 상관에 대한 신의를 지키겠다고 할 때도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담담히 표현해서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또 어느 누구도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배우 이선균 개인의 서사가 묘하게 박태주의 마지막과 겹친다. 박태주의 말과 행동이 이선균의 말과 행동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선균에게도 정인후 같은 이가 있었더라면, '행복의 나라'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를 더 이상 스크린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오는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 시간 12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