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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 61년 만에 인정 받은 '정당방위'
입력 2025-07-29 12:30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비즈엔터DB)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은 박인준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사람,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비즈엔터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61년 전, 한 여성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가 오히려 가해자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이는 1964년 발생한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법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판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61년 만에 재심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1964년 발생한 이 사건은 남성이 주거에 침입하여 피해자인 최말자 씨에게 강제 키스를 시도했고, 저항 과정에서 최 씨가 가해자의 혀를 물어 1.5cm 절단한 사건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부산지법의 판결은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피해 여성인 최 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가해 남성은 주거침입과 협박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피해 여성이 더 무겁게 처벌받은 것이다.

최 씨는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난 60년간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3일 재심 법정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검찰이 최 씨에게 사과하고 정당방위로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오는 9월 판결 선고가 날 예정이며, 61년간의 억울함을 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정당방위 인정의 까다로운 요건들

이 사건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대한민국 법원이 정당방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여러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방어 행위여야 하며, 방어행위가 상당성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이 '상당성' 판단에서 법원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조금이라도 과도하게 방어했다고 판단되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수십만, 수백만 건의 폭행 사건 중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희박하다.

필자 역시 정당방위 무죄 판례를 만든 경험이 있다. 당시 주변 동료 변호사들은 "절대 정당방위가 인정될 수 없다"면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진행한 결과 정당방위 무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워낙 정당방위 판례가 적기 때문에 필자의 이 판례도 이번 최 씨의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 씨의 재심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선다. 대한민국 사법 정의와 정당방위 인정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불합리한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국민의 정당한 방어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61년이라는 긴 세월 끝에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최말자 씨께 경의를 표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정당방위 사건에서 합리적인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정당한 방어권은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