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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밥상' 소고기 한점
입력 2025-09-04 06:30   

▲'한국인의밥상' 최수종(사진제공=KBS1)
'한국인의밥상' MC 최수종이 서울 독산동 우시장의 '꽃아롱사태'와 '황제 늑간살' 전북 군산의 '내장 전유화', '소골탕', '우삼탕' 대구광역시의 '뭉티기', '오드레기' 경남 진주의 '소 목뼈찜', '거지반'(육전국밥)을 맛본다.

4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릴 데가 없다는 소.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를 즐기는 민족, 한국인. 예로부터 소고기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남달랐는데 조선시대 왕이 즐겨 찾던 특별한 보양식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음식까지 소고기 한 점에 깃든 옛이야기와 그 풍미를 따라가 본다.

▲'한국인의밥상' 꽃아롱사태, 황제 늑간살(사진제공=KBS1)
◆ 발골 장인들만 아는 진미 – 꽃아롱사태, 황제 늑간살

서울 금천구 독산동, 축산물 도매 상가가 밀집한 이곳의 하루는 동이 트기 전부터 시작된다. 매일 새벽, 막 도축을 마친 소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40년 경력의 발골사 박영선 씨(64세)는 하루에도 5~6마리의 소를 해체한다는데, 소 한 마리를 해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등심, 안심, 사태, 뒷다리 등 큰 부위를 잘라내는 것을 ‘대분할’이라고 한다. 대분할이 끝나면 나면 각 부위별로 세분화 작업을 거치는데 그 과정을 통해 무려 100여 가지의 다양한 부위가 탄생된다는 것.

질리도록 소고기를 맛보는 발골사들이지만 그들조차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부위가 있다는데 바로 사태 속에 숨어있는 ‘꽃아롱사태’다. 소 한 마리에서 고작 200g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로, 날로 먹으면 갓 잡아 올린 생선회의 쫄깃한 식감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하나, 손질이 까다로워 시중에 잘 유통되지 않는 특별한 부위가 있다. 갈비뼈 사이 사이, 꼭꼭 숨겨진 ‘황제 늑간살’, 뼈 사이를 일일이 발라내야 얻을 수 있는 이 부위는 그 맛이 으뜸이라 황제라는 칭호까지 붙었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발골사들만의 진미는 또 있다. 바로 작업 후 남은 잡육이다. 갖가지 부위를 손질하고 남은 자투리 고기, 하지만 찌개나 국에 넣으면 소 한 마리를 다 맛본 듯 깊은 풍미를 낸다는 것. 서울 독산동에서 만난 발골사들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소고기의 깊은 맛을 만나본다.

▲'한국인의밥상' 내장전유화, 소골탕, 우삼탕(사진제공=KBS1)
◆ 수라상에도 올랐던 귀한 음식 소 – 내장전유화, 소골탕, 우삼탕

소 한 마리도 함부로 잡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 금지할수록 탐하고 싶은 욕망, 소고기 한 점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기에, 이를 활용한 다양한 소고기 음식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한 내장 음식 문화가 싹텄다고 한다. 똑같은 내장 음식이라도 궁에서 만들면 손이 많이 가고 과정이 복잡하다는데,

수라상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내장으로 부쳐낸 전을 ‘내장 전유화’라 부르는 것도 그만큼 내장 하나 하나를 공들여 손질하고, 꽃처럼 정갈하게 부쳐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군산의 요리 명장 제 1호인 유현자(77세) 씨는 어린 시절 집안 제사나 명절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던 음식이 바로 ‘내장전유화’ 였다고 회상하는데 이는 조선시대 왕실의 음식이 양반가까지 전해진 덕분이다.

소의 골로 전을 부쳐 탕 위에 올린 ‘소골탕’은 정조 임금이 혜경궁 홍씨의 회갑에 올렸던 음식으로 전해지고, 또 소의 생식기를 사흘 동안 삶아 전복, 해삼, 수구레와 함께 곁들인 ‘우삼탕’은 세종대왕이 즐겨 찾던 보양식이었다. 천한 재료조차도 귀하게 빚어냈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 그리고 그 음식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문헌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조선시대 음식문화를 들여다본다.

▲'한국인의밥상' 뭉티기, 오드레기(사진제공=KBS1)
◆ 전국에 불어닥친 ‘뭉티기’ 열풍, 그 시초를 찾아서 – 뭉티기, 오드레기

해방 직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 있던 대구. 대구를 대표하는 별미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뭉티기’와 ‘오드레기’다. 뭉티기의 시작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여중현(83세) 사장이 처외삼촌과 함께 차린 소박한 좌판이었다. 여중현(83세) 사장님의 삼촌은 소의 엉덩이 살을 뭉툭뭉툭 썰어 잔술과 함께 내놓았는데, 투박한 그 맛이 사람들의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찰기고 쫀듯한 뭉티기의 식감을 위해 49년째 당일 도축한 신선한 고기만을 고집한다는 데. 여기에 손맛 좋던 아내가 개발한 특제 양념장이 곁들이면 먹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단다.

이 집의 또 다른 별미는 ‘오드레기’.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소의 대동맥, 일명 ‘오드레기’는 버려지는 부위였다. 버려지는 부위를 공짜로 얻어와 손님상에 구워내기 시작했는데 그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며 찾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때는 하찮게 여겨졌던 부위들이 세월을 지나 별미로 사랑받기까지 ‘뭉티기’와 ‘오드레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국인의밥상' 소 목뼈찜, 거지반(육전국밥)(사진제공=KBS1)
◆ 소고기 문화에 빠질 수 없는 백정, 그들만의 음식 – 소 목뼈찜, 거지반(육전국밥)

뒤늦게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이종상(49세) 씨, 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진주 백정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종상 씨가 백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진주의 화려한 교방 문화가 탄생된 이면에는 백정의 땀과 눈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3대 우시장이 있었던 진주. 진주성을 애워싼 남강 아래쪽엔 백정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다. 백정들은 평생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 그들이 잡은 소만 진주성으로 건너오곤 했다. 진주 교방 음식을 대표하는 육전이며 화반 비빔밥은 모두 백정들이 잡은 소가 있었기에 탄생된 음식이라는 것.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백정의 음식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음식은 ‘소 목뼈찜’, 가장 싸고 맛없는 부위지만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삶고 조리면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게 백정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 목뼈 찜과 함께 진주의 역사를 담은 또 하나의 음식, ‘거지반’. 우설, 소머리, 꼬리를 한데 넣어 끓인 국물에 시래기와 파 등 갖은 재료를 넣고 그 위에 소고기 육전을 올려 먹는 국밥인데, 일종의 육전 국밥이다. 일제강점기, 진주의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걸인들에게 시장 상인들이 고마움을 담아 육전 국밥을 건냈고, 그때부터 진주에서 육전 국밥은 ‘거지반’으로 불리게 됐다. 누군가에겐 애환이 담긴 음식, 누군가에겐 응원을 보내는 음식으로도 쓰였던 소고기. 그 한 점에 담긴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