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형묵은 ‘폭군의 셰프’를 통해 자신의 한계 너머를 마주했다. 벼랑 끝에서 시작된 싸움은 결국 그를 가장 뜨겁게 빛나게 했다.
“그야말로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최근 서울 마포구 비즈엔터에서 만난 김형묵은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 속 '우곤'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가 연기한 명나라 사신 ‘우곤’은 오만하고 교활한 인물이다. 연지영(임윤아)의 요리에 감탄하면서도 정치적 계산과 자존심 때문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조선과 명나라의 요리 대립을 촉발하는 인물이자, 유머와 긴장을 오가는 입체적 캐릭터였다.

김형묵은 장태유 감독과의 전작 ‘밤에 피는 꽃’ 인연으로 이번 작품에 합류했다. 그러나 문제는 대사의 대부분이 중국어였다는 것. 당시 그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과 영화 ‘군체’ 촬영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촬영 2주 전이 다가올 때까지 그는 대사 한 문장도 외우지 못한 상태였다.
“솔직히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뮤지컬 공연 중이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리허설이 이어졌거든요. 그런데 마음 한켠에서 ‘이번 역할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미친 듯이 시작했습니다.”

그가 외워야 했던 대사는 무려 350문장. 단어 수로는 약 3000개에 달했다. 사신의 위엄과 교활함을 담은 긴 대사들 사이에서, 그는 하루 5시간 수면만으로 버텼다. 나머지 시간은 모두 중국어 암기에 쏟아부었다.
“속으로만 외우면 현장에서 입이 안 떨어져요. 그래서 무조건 소리 내서 외웠습니다. 연습실도 따로 구하고, 낮에는 공유 오피스에서 대사 연습을 했는데 중국어로 소리치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그래서 전화박스 안에 들어가서 혼자 소리쳤어요. 하하. 그게 제 방식이었죠.”

그야말로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김형묵은 대사의 압박감에 한순간 모든 게 백지처럼 날아간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난 할 수 있다’고 되뇌었어요. 감사와 긍정이 진짜 뇌를 바꾼다는 걸 느꼈습니다. 외워지지 않던 문장이 외워지고, 무너질 것 같던 마음이 버텨지더라고요.”
그는 중국어 대사를 완벽하게 암기하면서도 인물의 감정을 살리는 것에 포인트를 뒀다.
“우곤은 권력의 중심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냉철한 인물이에요. 완벽한 중국어보단 감정의 온도, 어조의 힘이 중요했어요.”

김형묵의 도전 뒤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과 ‘노량’에서 중국어 자문을 맡았던 고해성 코치다.
“‘노량’ 시사회 뒤풀이에서 단 한 번 봤던 친구였어요. 촬영 일주일 전, 절박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죠.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준비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중국어 코치뿐 아니라 멘탈 코치 역할까지 해줬거든요. 매일 아침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게 그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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