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2025년 충청남도 건축상 주거분야 대상을 받은 보령 주택단지의 요새 같은 집을 소개한다.
◆건축상 7관왕의 신혼집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들이 줄지어선 골목에 눈길을 사로잡는 집이 하나 있다. 가파른 지붕 위로 이끼가 껴있어 녹색 지붕처럼 보이는 이 집. 50년 된 구옥을 리모델링한 것이라는데? 한 해에만 7개의 건축상을 받은 건축가의 신혼집에서 그의 건축 철학을 탐구해 본다.
2025년 무려 건축상을 7개를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로 자리매김한 정이삭. 흥미로운 건 건축상을 받은 그의 작업 모두가 마치 문화재를 복원하듯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의 신혼집 역시 1971년에 지어진 오래된 구옥. 북사면의 산과 가까운 집의 특성상 지붕에 가득 낀 이끼가 그에겐 묘한 낭만과 몽환적 느낌을 선사했다. 그는 이끼 낀 석고 기와지붕을 걷어내는 대신 망가진 부분만 시멘트 보드로 보강하고 50년 전 벽돌 마감재를 그대로 남기는 등 최대한 집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한 이상 ‘시간’이 완성한 아름다움을 최대한 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옛 주인이 만든 집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주인이 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함께 작업을 한 모든 인부들의 이름을 적어 상량문에 기록했다. 수십 년 뒤에 누군가 이 집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면 정이삭 건축가가 그랬듯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당시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집의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실 전면에 창을 높여 채광을 확보했고, 비효율적이었던 천장은 현대의 단열 기술을 더해 탁 트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오래된 집에 동시대성을 부여한 것이다. 특히 정이삭 소장은 마음에 드는 천장재를 찾지 못해 직접 제재소를 찾아 나무를 켜내고 집의 가구를 디자인하고 난간과 창살을 만드는 등 현장을 뛰어다니며 직접 마감을 챙겼다. 이는 그동안 공공건축분야에서 활동하며 큰 건축담론에 강했던 정이삭이라는 건축가가 실은 주택처럼 디테일이 중요한 건축에도 강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 지난해 건축상 7관왕의 영예로 이어졌다.
정이삭 소장의 특별한 취미는 남들이 모으지 않는 골동품 모으기. 1988년 서울올림픽 호돌이 포스터부터, 낡은 카세트 전축, 오래된 만화책, 그리고 리모델링 현장에서 주워 온 이름 모를 물건들로 가득한 2층의 다락방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어린 시절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자, 잊혀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집은 건축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긴 시간 동안 채워가는 것"이라는 그. 4년간 사무실로 쓰던 공간을 작은 변화만 주어 꾸린 신혼집에서 부부는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기대된다고 말한다.

보령의 한 주택단지, 전면에 창이 전혀 없는 요새 같은 집이 있다? 2025년 충청남도 건축상 주거분야 대상을 받은 이 집에 건축사만 무려 3명? 설계만 3년이 걸렸다는 이 집의 사연은 무엇일까?
남편은 지역의 대목수였던 선친의 뒤를 이어 40년간 건축업에 몸담아왔다. 이런 아버지를 따라 아들과 딸까지 건축을 하면서 3대가 건축가인 집안이 되었다. 남편은 지난 수십 년간 건축 일을 해왔지만 자신이 살 집은 설계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아내의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부부를 위한 집을 짓기로 결심하는데, 건축가인 아들과 딸까지 머리를 맞대다 보니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새로운 수정사항이 생길 정도로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면서 2층 박공지붕 집은 2층 평지붕을 지나 단층 분동형태에서 최종 단층 디귿자 구조가 나오기까지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런 치열한 고민 끝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집이 지역 건축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집의 입구에는 미로 같은 경사로가 있는데 외부인이 접근을 건축적 아이디어로 차단한 보안시스템이자 노년의 생활을 고려해 계단 대신 만든 것이다. 남편이 어린 시절 골목길로 연상하며 제안한 디자인인데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또 집의 삼면에 창문이 하나도 없어 외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한 요새 보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반전이 펼쳐진다. 정원을 향해 크게 나있는 커다란 통창이 바깥은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며 창이 없는 집의 단점을 상쇄한다. 거실을 포함해 모든 방마다 중정을 두어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환기와 채광까지 놓치지 않았다. 때문에 전면에서 보이는 폐쇄적인 집의 이미지와는 달리 내부는 매우 밝고 개방적이다.
실내는 가전과 가구의 치수를 미리 재어 설계에 반영했다. 또한 보조주방과 야외 공간을 잇는 순환 동선으로 실용성을 극대화하고 보령의 환경에 어우러지는 노출콘트리트 소재를 완성도 있게 시공했다. 건축 경력 40년 남편의 집요함이 만들어낸 디테일이다. 안방에 딸린 널찍한 중정에는 노천 욕조가 자리한다. 겨울엔 부부의 쉼터로, 여름엔 손주들의 수영장으로 변신한다.
"지역 건축가도 서울 못지않게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남편.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지은 이 집에서, 부부는 앞으로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