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한 인물을 두 배우가 나눠 연기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의 서유민은 제문재의 얼굴로 성형하기 전에는 박윤호가, 성형한 뒤에는 류준열이 연기했다. 1인 2역은 흔해도 '2인 1역'은 드물다. 박윤호는 완성본 속 '류준열의 유민'을 보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다"라고 감탄했다.
"제가 연기한 장면들은 다 절박하고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준열 선배님이 이어받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안정된 모습으로, 진짜 제문재보다 더 진짜 제문재같이 행동하더라고요. 이미 모든 계획을 쥐고 머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처럼요. 그 차이가 명확하게 보여서 인상 깊었어요."
박윤호는 서사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던 인물 서유민을 채우기 위해 대본에 없는 '서유민의 하루'를 일기처럼 써 내려 갔다. 일기에 가장 많이 쓴 감정은 슬픔보다 당혹스러움이었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유민으로서 문재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더라고요. 일기에도 '얘가 나한테 왜 이러지'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갑자기 내 인생에 뜬금없이 나타나서 '왜 행패를 부리는 거지?' 하는 어이없는 마음이 컸죠."
'들쥐'를 본 시청자들은 서유민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박윤호는 연기할 때는 당연히 서유민의 편이었지만, 완성된 '들쥐'를 본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유민이도 결국 끝이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문재가 행복해진 것도 아니다"라며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을 보며 '우리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이 생겼다"라고 밝혔다.
팬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앞선 작품에서 데스 게임의 첫 번째 희생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는 고등학생, 학교 폭력의 피해자에 이어 비운의 서사를 가진 인물을 또다시 연기하자 "언제 안 맞고 언제 피를 안 묻히냐"라며 애정 어린 푸념을 한 것. 특히 죽은 여자친구 민영(송수이 분) 곁에서 문재의 소설을 읽는 유민이 섬뜩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런데 팬들이 지적했던 그 장면은 공교롭게도 그가 대본을 처음 읽고 멈칫했던 장면이었다.
"대사가 '죽은 민영이를 옆에 두고 밤새도록 네 소설들을 읽었지'였어요. 대본만 봐서는 '죽은 민영이'를 어떻게 옆에 뒀을까 싶었어요. 유골이나 사진을 옆에 둔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 보니 시신이 있더라고요. 찍으면서 저도 더 섬뜩하더라고요. 유민이 그만큼 정신을 놔버렸다는 걸 느꼈죠."

박윤호는 넷플릭스 시리즈 '트리거'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 박규진 역을 연기하며 눈물 연기의 깨달음을 얻은 바 있다. '들쥐'는 그에게 감정 연기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남겼다.
"현장에서 스태프분들이 준비되면 신호를 달라고 시간을 주시거든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 시간을 온전히 쓰지 못했어요. 다들 저만 기다리는데 눈치도 보이고, 빨리 준비됐다고 해야 할 것만 같았어요. 80% 준비됐는데 100% 됐다고 말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들쥐'를 하면서 느낀 건 감정이 100% 충전될 때까지 나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거예요. 주변을 의식하는 순간 오롯이 몰입할 수 없다는 걸 배웠어요."

다짐대로 그는 쉼 없이 달렸고, 차기작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대리수능'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이후 '위대한 방옥숙', '프로모터', 영화 '랜드'로 대중과 만날 예정이다.
"앞으로 나올 작품들이 하나하나 다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들쥐'로 저를 알게 되신 분들에게 조금 더 지켜봐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박윤호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 주세요. 새로운 모습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