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김현주는 '실낙원' 속 아들 선우 역의 배현성과는 촬영 전 충분히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 한두 차례 만난 뒤 곧바로 촬영에 들어갔고, 현장에서는 각자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김현주는 작품의 무게와 캐릭터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배현성 역시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배우한테 그런 역할이 온다는 건 굉장히 기회라고 생각해요. 결정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캐릭터였을 것 같아요. 스스로 안에서 고민하고 싸우는 것도 많았을 텐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김현주가 바라본 연 감독은 머릿속 독특한 발상을 실제 작품으로 구현하는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저는 한 작품이 끝나면 쉬면서 비워내야 하는데, 감독님은 일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게 저로서는 신기했어요. 연상호 감독님은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에요."
작품 속 AI는 소영에게 상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위안이지만, 동시에 현실과의 경계를 흐리는 존재다. 김현주는 AI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술 자체에 반감이 있다기보다 이미 스마트폰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핸드폰을 잠깐 두고 외출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다시 가지러 가요. 내비게이션도 못 켜고, 전화도 못 하고, 외우는 번호도 없잖아요. 이미 핸드폰 없이는 안 되는 사람이 됐다는 게 어느 날 문득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기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주는 AI로 제작한 영상들을 보며 완성도에 놀랐고, 이러한 변화가 시대의 흐름이라면 결국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기술이 정교해지는 것과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봤다. 화면과 정보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어도 직접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까지 온전히 대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나 사색은 AI가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으로는 완전히 대신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눈빛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깊은 곳까지 알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실낙원'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상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결국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물론 정답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사색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 것 같고,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느끼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