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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인터뷰] 영화 '헌트' 이정재 감독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입력 2022-08-12 00:00   

▲영화 '헌트'를 연출하고 '박평호'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이정재(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배우 이정재는 지난해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신드롬으로 미국배우조합 시상식,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다음 달 열리는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 에미상에서도 수상이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해외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받은 자신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지인들에게 "이제 당신 차례"라는 말로 화답한다. 나도 하는 걸 당신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에서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정재는 10일 개봉한 영화 '헌트'로 '영화감독'이 됐다.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들의 첩보 액션을 그린 '헌트'를 통해 어엿한 '감독님'이 된 것이다.

최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이정재는 '헌트'를 통해 영화감독을 꿈꾸는 배우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도 한 걸 당신이 못 할 이유가 없다면서 말이다. 그는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영화 '헌트'를 연출하고 '박평호'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이정재(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헌트' 이정재 감독과의 문답

Q. 영화에 대한 평들이 좋다.

이정재 : 정우성과 같이 23년 만에 한 작품에 출연한 것에 관객들이 반가워하는 것 같다.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태양은 없다' 이후로 언제 같이 또 둘이 영화를 할 거냐고 많이들 물었다. 아직까지도 나와 정우성이 뭔가를 한다는 것에 많이 관심 가져주고, 응원해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Q. 연출을 결심한 이유는?

이정재 : 처음엔 제작을 하고 싶어 '남산'('헌트' 원작 시나리오) 판권을 샀다. 주제를 조금 고치고 싶었는데, 고치다 보니 상당 부분의 이야기를 수정해야 했다. 원래는 박평호(이정재) 시점의 이야기였는데, 김정도(정우성) 분량을 늘려 투톱 구조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고친 건 8번, 세부적인 내용들을 고친 것도 각 버전마다 수 차례 된다.

그러면서 연출을 맡아 줄 감독들을 찾았다. 문제는 시대극에 난이도 높은 액션, 해외 촬영까지 계획하다보니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나라는 걸 깨닫고, 결국 끝까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시나리오 초고와 달라진 점이 또 있다면?

이정재 : 방주경(전혜진)이라는 역할은 초고에선 두신 밖에 나오지 않는 역할이었다. 허성태가 연기한 장철성이라는 인물도 초고엔 없는 인물이었다. 인물 구성과 인물 관계도가 바뀌면서 많은 캐릭터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무엇보다 주제 의식을 살리기 위해 박평호와 김정도, 두 사람의 텐션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영화 '헌트' 스틸컷(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Q. '헌트'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이정재 : 근래 몇 년 동안 사회가 이렇게 둘로 나뉘어 분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나 봤던 것 같다.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이 누구에 의해 생성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를 주제로 잡아서 시나리오를 고치기 시작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가 이념적으로 가장 치열하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채 가공하고, 재생산했던 시대였다고 생각해 '헌트'의 시대적 배경을 1980년대로 확정 짓게 됐다.

Q. 각색의 과정도 만만치 않게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

이정재 : 이런 주제와 이런 이야기들을 내 손으로 쓰는 건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훌륭하게 글을 쓰고, 연출할 수 있는 감독들을 찾았던 것이었다. 중간에 너무 어려워서 포기도 수차례 했었다. 그럴 때마다 기댈 곳은 실제 사료였다. 그 시대의 인물과 상황들을 영화 안에 잘 녹여낼 수만 있다면 흥미로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영화 '헌트'를 연출하고 '박평호'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이정재(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Q. 결과적으로 허구적인 이야기면서도 현실과 동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가 탄생했다. '헌트'를 만들면서 지킨 무게중심이 있다면?

이정재 : 박평호와 김정도, 두 인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 과연 정의로운지, 또 그 정의로움을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췄다.

Q. 정우성을 캐스팅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무려 네 번이나 고사했다고 하던데.

이정재 : '남산'을 처음 봤을 때, 정우성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판권을 구매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같이 출연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투톱 구조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막상 판권을 구매했지만,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과정이 많이 미흡했다. 정우성은 연출만으로도 쉽지 않고, 또 우리가 함께 출연하면 사람들이 많은 것을 기대할 텐데 그 모든 것을 잡을 수 있겠냐고 하더라. 우려가 많았다. 당연한 걱정이었다. 우리가 친분이 있더라도 프로젝트가 미흡하다면 같이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시나리오기 때문이다.

▲영화 '헌트'를 연출하고 '박평호'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이정재(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Q.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소감은?

이정재 : 정우성은 많은 경험을 한 훌륭한 배우다. 연기자들은 누구와 함께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큰 흐름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상대방과 어떤 온도로 합을 맞춰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나 역시 시나리오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시나리오 안에서 상대방의 호흡에 맞춰 움직였다. 물론 정우성과는 호흡이 맞기 때문에 긴장감 있는 극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감독을 꿈꾸는 배우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이정재 : 나도 하는데 뭘 걱정하느냐. 이제 당신 차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연기자가 무슨 연출을 하고, 연출자가 무슨 감독을 하느냐는 말이 많았다. 이제는 누구나 멀티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헌트'는 내가 잘났기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 영화계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또 용기 내서 뭔가 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확산됐으면 좋겠다. 그게 지금 내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