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태양이 영화 '정보원'에서 연기한 '김 팀장'은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강자에겐 간과 쓸개를 내어줄 듯하지만, 자신과 동등하거나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표정을 싹 바꾸고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그런데 관객들의 혈압을 오르게 만든 이 얄미운 남자 '김 팀장'의 본체, 배우 손태양은 카메라만 꺼지면 94% 내향형, 'I' 인간이다. 그는 "촬영장에서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라고 말하지만, 스크린 위 그의 모습은 지난 16년간 응축해 온 독기가 가득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비즈엔터를 찾은 손태양은 험난했던 '김 팀장' 탄생기를 털어놓으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관객들에게 '김 팀장'이 욕먹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하하."
손태양은 MBC 드라마 '웰컴2라이프'의 악질 재벌 3세 석경민, '연인'의 냉혹한 청나라 실권자 도르곤 등 소위 '센 캐릭터'들을 맡았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연기도 경험했다. 강한 캐릭터들에 익숙해진 탓일까. 처음 시나리오의 '김 팀장'과 마주했을 때도 습관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엔 대사를 아주 강하게 뱉었어요. 그동안 제가 악역들을 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감독님께선 좀 더 유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두 달 동안 연기의 힘을 빼는 데 집중했습니다."
노력은 빛을 발했다. '정보원'의 '김 팀장'은 묘하게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를 섞어 현실에 있을 법한 밉상이 됐다. 손태양은 "저 사람 진짜 꼴 보기 싫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얄미워 보이는 게 목표였는데, 관객 반응을 보니 성공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라고 전했다.
손태양은 스스로 "'I(내향형)' 성향이 94%인 집돌이"라며 자신의 MBTI 성향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정반대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고충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하지만 "주어진 걸 해내는 건 평균, 잘하는 것이 배우의 역량"이라며 "평소 성격과 상관없이, 촬영장에서는 그 일을 수행해야 하는 프로로서 작품 속 인물이 되는 스위치를 켠다"라고 단단한 소신을 밝혔다.
손태양은 '정보원'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 소속사 대표의 부름에 식사 자리인 줄 알고 나갔던 식당에서 그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바로 '정보원'의 시나리오였다. 어리둥절한 손태양에게 대표는 '김 팀장' 역에 캐스팅됐다고 전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오열했다.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던 지난 세월의 설움이 씻겨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감격도 잠시, 현장은 냉혹했다. 첫 촬영부터 주연 배우 허성태, 조복래 앞에서 무려 16줄이나 되는 긴 대사를 홀로 소화해야 했다. 심장이 귀 옆에서 뛰는 듯한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던 손태양을 붙잡아준 건 조복래였다.
"조복래 선배님이 '너 이거 버텨야 넘어갈 수 있다. 네가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 보이는 거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솔직히 네 연기 걱정되는데, 돈 받고 연기하는 순간부터는 프로야. 더는 배우 지망생이 아니야'라는 선배님의 따끔한 충고 덕분에 정신 차리고 '김 팀장'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②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