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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인터뷰] '왕과 사는 남자' 임은정 대표 "천만 기적, 진심은 결국 통한다"
입력 2026-03-13 00:00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난 2년간 관객들의 발길이 뜸했던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은 작품이다.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는 창립작 '왕과 사는 남자'로 단숨에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 제작자'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 거대한 기적 앞에서 들뜨기보다 제작자로서의 본질을 먼저 되새겼다.

임은정 대표는 지난 12년 동안 CJ ENM 영화사업부 투자팀과 기획제작팀을 거치며 '국제시장', '베테랑', '엑시트' 등 굵직한 흥행작들의 탄생을 지켜봐 온 베테랑이다. 하지만 남이 만들어놓은 배의 항해를 돕는 투자자의 위치를 떠나, 직접 파도 위에 올라타 키를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배간 단종의 마지막 4개월을 그린 ‘왕과 사는 남자’. 단종 역의 박지훈(왼쪽)과 그의 최후를 지킨 엄흥도 역의 유해진(사진제공=쇼박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임 대표는 벅찬 감정과 초기의 두려움을 동시에 털어놨다. 인터뷰 내내 겸손함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는 제작자로서의 단단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개봉 첫날 스코어를 보고는 '나 사기꾼 되는 거 아니야?' 싶어 잠도 못 잤어요. 하하. 사실 천만이라는 숫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선물이죠. 설 연휴를 기점으로 관객들의 입소문이 터지는 걸 보며 비로소 영화가 가진 진심의 힘을 믿게 됐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사진제공=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는 임 대표가 2019년부터 가슴속에 품어온 오랜 숙제였다. 당시 CJ ENM 투자팀 소속이었던 그는 '왕과 사는 남자'의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작 중단이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임 대표는 이야기를 쓴 황성구 작가를 만나 "5년 안에 이 작품을 반드시 세상에 내놓겠다. 그때까지 이 시나리오를 아무에게도 주지 말고 기다려달라"며 간곡히 설득했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작품의 가치만을 믿고 건넨 진심 어린 청탁이었다.

결국 그는 "내가 직접 해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창작자들에게도 다음이 생길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사표를 던졌다. 홀로서기를 앞둔 2022년 9월, 고민의 끝에서 떠난 포르투갈 서핑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한 달간 파도를 타며 퇴사 이후의 삶을 그려봤어요. 그때 처음 방문한 서핑숍 이름이 '온다(Onda)'였는데, 포르투갈어로 '파도'라는 뜻이더군요. '파도가 온다'는 그 말이 마치 저에게 기회가 오고 있다는 신호처럼 설레게 느껴졌어요. 서퍼가 가장 좋은 파도를 잡기 위해 묵묵히 기다리듯, 좋은 영화를 만들 준비를 마쳤다는 다짐으로 영화사 이름을 '온다웍스'로 정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 박지훈(사진 = 쇼박스)

임 대표는 장항준 감독의 유연한 연출과 배우 박지훈의 발견을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공 비결로 꼽았다. 특히 '단종 오빠' 신드롬을 일으킨 박지훈에 대해서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약한 영웅'에서 보여준 박지훈 배우의 눈빛을 보고 '이 친구와 하면 길이길이 남는 단종이 나올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촬영 기간 내내 독하게 체중을 감량하며 캐릭터에 몰입하는 열정을 보며 제작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죠. 장항준 감독님 역시 특유의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힘이 있어요. 한 번 거절 당했지만 끝까지 감독님을 설득하고 연출을 부탁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분 좋은 흥행 질주 속에 때아닌 표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임 대표는 단호하고 명확했다. 그는 "시나리오가 발전하는 모든 과정의 히스토리와 계약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있다"며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다 보니 생긴 오해겠지만, 근거 없는 의혹에는 당당하게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사진제공=쇼박스)

임 대표에게 '왕과 사는 남자'는 제작자로서의 로드맵을 확인시켜 준 소중한 나침반이다. 그는 이 영화가 현재 한국 영화계가 마주한 위기를 해갈할 수 있는 단비 같은 작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진심을 전했다.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분명해야 관객도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재미를 넘어 '왜 지금 이 영화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죠. 저는 '왕과 사는 남자'가 새로운 창작자와 배우들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주는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순위에 연연하기보다 다음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