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의 공백이 무색했다. '암살'(2015) 이후 스크린에 돌아온 전지현은 '군체'의 중심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감염자가 들끓는 생지옥 한복판에서도 의로움을 추구하는 생물학과 교수 권세정의 얼굴 뒤에는 '진화하는 좀비'라는 낯선 도전을 즐긴 전지현의 호기심이 있었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새롭게 빚어낸 좀비물로, 지난 30일까지 누적 관객 310만 9178명을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전지현은 극 중 생명공학과 교수이자 생존자 집단을 이끄는 리더 권세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군체'의 특징은 좀비가 진화한다는 데 있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기존 좀비 공식 대신 네트워크로 연결돼 실시간으로 진화하고 하나의 군집으로 움직이는 감염자를 내세웠다. 전지현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 설정에 매료됐다.

"좀비가 AI처럼 진화한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AI에게 사유를 통째로 넘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하는 감독님의 메시지도 좋았어요."
연상호 감독을 향한 전지현의 애정은 각별했다. 그는 연 감독에게 '좀비들의 아버지', '좀버지' 같은 별칭을 붙이며 신뢰를 드러냈다. 평소 연 감독의 작품을 빠짐없이 챙겨봤다는 그는 '군체' 시나리오를 받기 전부터 출연을 결심한 상태였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 작품을 다 봤고 욕심 내왔던 작품도 있었거든요. 감독님이 보여주는 세계관이나 작품의 색이 어두울 때도 있는데, 연상호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했어요."

어두운 색채의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인 만큼 현장도 예민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직접 만난 연상호 감독님은 유머러스하고, 편안하고, 재미있는 분이었어요.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 지켜지는 최고의 작업 환경이었고요. 하하. 감독님 세계관이 워낙 뚜렷해서 배우들은 그 안에서 연기에만 집중하면 됐죠. 다른 배우들이 왜 연 감독님과 여러 번 작업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연 감독의 현장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콘티가 정확했기에 배우들은 에너지를 크게 쓸 필요 없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면 됐다. 그 단단한 세계관 위에서 전지현은 권세정에 특별함을 덧입히기보다 관객이 곧 권세정이 되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가장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은 본성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권세정이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기보단 권세정의 선택이 곧 관객의 선택이 되고, 함께 영화 속 상황을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전지현은 충무로에서 손꼽히는 액션 퀸이지만 이번만큼은 실력 보여주기를 자제했다. 생명공학박사라는 배역에 더 걸맞은 선택이었다.
"교수가 액션을 잘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하하. 화려한 동작은 자제하자고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어요."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선 전지현은 거창한 분석보다 좀비라는 장르 그 자체를 즐겨주길 바랐다.
"좀비라는 장르가 주는 재미를 오롯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결국 새로운 경험을 주는 거니까요. 어려운 분석보다 극장에서 그 에너지를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②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