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변호사 박인준의 통찰'은 박인준 법률사무소 우영 대표변호사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사람, 그리고 사회 이슈에 대한 명쾌한 분석을 비즈엔터 독자 여러분과 나누는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변호사로서 수많은 이혼 사건을 담당하면서 느끼는 것은,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의 이혼과 없는 상태에서의 이혼은 그 난이도가 천지 차이라는 점이다. 자녀가 없을 때야 위자료나 재산분할 정도만 마무리하면 되지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복잡하고 많다.
친권자와 양육권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 양육비는 얼마로 정할 것인가, 비양육친의 면접교섭권은 어떤 방식으로 몇 회나 실시할 것인가. 이런 복잡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어야만 이혼이 성립된다. 그런데 정작 이혼 후 현실은 어떨까?
◆ 양육비 미지급, 냉혹한 현실
안타깝게도 약속된 양육비가 제때 지급되는 경우는 4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혼 과정에서 생긴 감정의 앙금이나 상처를 양육비 미지급이나 불성실한 지급으로 해소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인연을 아예 끊으려고 한두 번 지급하다가 '잠수'를 타거나, 면접교섭권까지 차단하며 아이를 비양육친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다. 부모의 감정 다툼과 보복 행위 속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 국가가 나선 '양육비 선지급제'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아지자, 결국 국가가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양육비 선지급제'다.
이 제도는 중산층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3개월 이상 양육비를 받지 못했을 때 국가에 신청할 수 있다. 국가가 먼저 자녀 1인당 월 20만 원을 지급하고, 나중에 비양육친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얼마나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이런 제도까지 도입되었을까. 기존의 형사 처벌, 과태료, 감치 등으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기도 하다.
◆ 끝나지 않는 부모의 의무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면 남녀 관계의 인연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있다면 부모로서의 의무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혼은 부부관계의 해소일 뿐,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면죄부가 아니다.
양육비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 아니다. 그것은 비양육친이 자녀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부모의 의무다.
이혼 후에도 자녀 앞에서는 여전히 부모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감정의 앙금이나 상처가 아무리 깊더라도, 그것이 아이들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 그 무거운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