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건축가도 감탄한 건축주의 남다른 감각을 담은 집을 소개한다.
◆폐가를 작품으로, 세 자매 공법
주왕산 국립공원 안의 하나뿐인 자연부락인 너구마을. 1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작은 동네에 100년 넘은 흙담집 세 채가 있다. 청송에 여행 왔다가 이 집들에 반한 부산 출신 세 자매가 사서 하나하나 손수 고친 집이다.
세 자매의 외갓집은 경남 진주의 산골 마을. 부산에서 자란 세 자매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 놀러 가서 아궁이에 불 땐 방에서 사촌들과 밤을 까먹고 계곡에 발 담그고 산딸기 따 먹으며 놀던 추억이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고, 나이 들면 그런 집에서 남은 생을 보내자는 꿈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막내 연순 씨가 청송에 여행 왔다가 이 집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상태는 폐가 그 자체였단다. 15년 이상 비어 있어서 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우거져 정글 같았다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폐가를 세 자매는 각자의 아이디어와 감각을 발휘해 빈티지한 매력이 가득한 흙담 너와집으로 재탄생시켰다. 파란 샌드위치 패널로 덮여 있던 지붕 위에 손수 송판을 가지각색으로 자르고 붙이는 새로운 너와 공법(?)으로 유럽의 산장 느낌의 지붕을 완성했고, 흙가루가 떨어지던 흙벽은 황토와 시멘트를 몇 번이나 비율을 바꿔가며 섞은 끝에 황토 색감은 내면서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튼튼한 벽으로 마감했다.
누구 하나 건축을 배운 적이 없지만, 어린 시절 친정엄마가 철마다 문짝의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부뚜막을 흙으로 둘러 바르던 것을 보며 자란 눈썰미와 감각만으로 무려 세 채의 집을 완성한 세 자매. 건축가도 한 수 배우고 온 세 자매의 독창적인 공법을 공개하고, 세 자매를 헌 집수리 달인으로 이끈 아련한 옛 추억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통의 재해석, 드라마 세트장 같은 집
서울 김포공항 근처, 도심 속 시골 마을인 강서구 개화동의 한 골목.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낡은 주택들 사이, 동네 분위기와 사뭇 다른 단아함을 자랑하는 집 한 채가 눈에 띈다. 붉은 적삼목으로 외벽을 마감한 단층집 현관을 들어서면 외관과는 반전 공간들이 펼쳐진다.
중정을 낀 미음자 구조에 한옥 문살과 중후한 고가구로 장식된 복도를 보면 전통 한옥 분위기로 꾸민 집인가 싶은데, 복도를 지나 거실과 주방 공간에 들어서면 유럽과 동남아, 중남미까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역대급 공간이 펼쳐진다. 한옥인가? 갤러리인가? 박물관인가? 이 집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유씨 집성촌이라는 개화동. 대대손손 살아온 지금의 집터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살았다는 건축주 유용훈 씨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장손에게 물려주신 이 집터에 서른셋에 집을 지었다. 할아버지의 기와집을 되살려보려다 비용 등 여러 제약 조건 때문에 허물고 신축하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던 어린 시절 옛집의 분위기를 새집에 녹이고 싶었단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전통 한옥 분위기는 싫었다.
저렴한 인조석으로 중세 서양의 고성을 연상케 하는 거실 벽을 완성하고, 주방은 남미 느낌 물씬 풍기는 주황색으로 마감했다. 콜라주 기법에서 착안해 조부모님이 쓰시던 고가구와 전 세계 여행지에서 사 모은 소품들로 글로벌 빈티지를 절묘하게 믹스매치했다. 심지어 뒷산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와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약돌까지도 감각적인 오브제가 되는 집. 한눈에 봐도 영화 세트장 같은 인상 덕분에 ‘응답하라 1997’ 등 여러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전통을 재해석해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분위기로 완성한 집. 건축가도 감탄한 건축주의 남다른 감각은 어디서 왔을지 탐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