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배우 이기택에게 지난 20대는 뜨거운 쇳덩이를 두들겨 날카로운 검을 만드는 ‘재련’의 과정과 같았다. 모델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배우로서는 조금 늦은 출발이었기에 그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현장을 갈구해 왔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현장에만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단역 시절의 초심을 꺼냈다.
배우라는 길에 확신을 얻기까지 부모님의 묵묵한 응원은 큰 버팀목이 됐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부모님은 "다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를 다독였고 이기택은 그 불안을 동력 삼아 혈혈단신 단역으로 떠난 현장조차 소중히 여겼다. 대구의 한 촬영장으로 가방 두 개를 짊어지고 내려가 새벽 4시에 촬영을 마치고 단역 선배들과 감자탕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의 이기택을 만든 자양분이 됐다.
그에게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신지수라는 캐릭터가 남다르게 다가온 것도 이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연기를 도피처 삼아 극단에 들어갔다가 점점 그 매력에 빠져드는 신지수의 여정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 배우를 꿈꾸게 된 뒤 연기를 향해 걸어온 자신의 길과 꽤 비슷했다.
"저도 처음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꿨던 건 아니에요. 군대 다녀온 뒤 배우가 되고 싶어서 그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죠. 점점 연기가 더 좋아지고 더 잘하고 싶어졌는데, 지수도 도피처였던 연기가 결국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로 바뀌어 가잖아요. 그 과정이 저랑 많이 닮았다고 느꼈어요."

작품이 없는 시기에도 이기택은 멈춰 서지 않는다. 최근에는 복싱과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액션을 제대로 소화해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고 언젠가 찾아올 해외 진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전공자인 친구들보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나는 그러면 캐릭터에 있어서 좀 더 잘해야 되는데 많은 걸 배우자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시간이 나면 어떻게든 뭘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런 치열한 자기 관리는 소속사 선배 차승원의 조언과도 맞닿아 있다. 모델 선배로서 먼저 배우의 길을 개척한 차승원은 그에게 "채찍질하는 건 좋은데, 그 채찍질이 나를 달리게 하려고 하는 거지 나를 멈추게 하는 건 안 된다"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이기택은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기보다 내면을 진정으로 채워야 타인에게도 매력적인 배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나를 채워주다 보면 나의 매력이 드러나고 주위 사람들이 나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되면서 더 효율적인 관계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승원 선배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니까 거기서 또 울림이 크게 왔습니다."

최근 출연한 쿠팡플레이 예능 '봉주르빵집' 촬영장에서도 그 울림은 이어졌다. 직접 식빵을 만들며 제빵의 정성을 온몸으로 익힌 그는 그 경험이 연기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온도며 발효 시간이며 하나하나가 다 민감하더라고요. 캐릭터에 얼마큼 애정을 갖고 시간을 쏟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연기랑 똑같은 것 같았어요."
그의 목표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성실한 배우'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는 당장의 화려한 성과보다는 30대 내내 단단한 결정체가 될 때까지 자신을 다듬고, 40대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날카로운 칼날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그러면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를 말했다.
"차기작을 빨리 준비하고 싶어요. 저는 제가 항상 어딘가에서 촬영 중인 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