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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리뷰] '비광' 빛나는 사람들의 추락, 그래도 끝내 남는 희망
입력 2026-08-25 07:00   

▲영화 '비광' 스틸컷(사진출처=㈜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한때는 누구보다 화려했던 톱스타 부부다. 한국 야구의 간판스타와 올 타임 레전드 배우.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삶은 남자의 딸이 갑자기 나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 '비광'은 중구(류승룡 분)와 남미(하지원 분)가 파경을 맞은 뒤 8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우림천 여중생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시 얽히게 되는 이야기다.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 분)를 구하기 위해 중구와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나서고, 남미 역시 자신들을 추락시켰던 8년 전 악연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제목인 '비광'은 고스톱의 패에서 가져왔다. 비를 맞고 있는 '광'이라는 이름부터 묘하다. 광 세 장이면 3점이지만, 비광이 포함되면 2점이 된다. 분명 빛을 가진 존재인데 같은 '광'으로 묶이면서도 온전히 같은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하는 셈이다. 빛나지만 빛을 잃은 것처럼 취급되고, 충분히 빛날 수 있지만 상황과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존재. '비광'이라는 제목에는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 '비광' 스틸컷(사진출처=㈜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이지원 감독은 전작 '미쓰백'에 이어 이번에도 어둡고 짠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특히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극, 재능은 있지만 힘은 없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충을 곳곳에 담아냈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것 같은 세상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는 꽤 불편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비광'이 끝까지 절망만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미는 과정 속에서 삶에 다시 희망이 생길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가도, 마지막에는 작은 온기가 남는다.

중구 역의 류승룡은 특유의 짠한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잃고 의욕조차 사라진 인물이다. 그런 중구가 딸 동주에게만큼은 진심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기력하고 초라해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딸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애잔하다. 무엇보다 "불행한 적이 없다"라는 중구의 말은 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인상적인 대사다.

▲영화 '비광' 스틸컷(사진출처=㈜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남미 역의 하지원은 기존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톱배우였지만 이제는 사회에 찌든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편안함을 넘어 어딘가 무심하게 늘어진 자세, 푸석해진 피부와 헤어스타일까지 외적인 변화가 상당하다. 단순히 외모를 내려놓은 것을 넘어 남미가 살아온 8년의 시간을 외형과 태도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동안 봐왔던 하지원의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동주 역의 김시아는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동주의 감정을 표정과 눈빛으로 보여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슬픈 눈과 표정에 담아내며 영화의 슬픔과 깊이를 더한다.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는 캐릭터지만 그만큼 김시아의 표현력이 인상적이다.

▲영화 '비광' 스틸컷(사진출처=㈜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어쩌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비광'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빛났지만 어느 순간 그 빛을 잃었거나, 빛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 사람들. 하지만 고스톱에서 비광이 삼광의 점수를 깎는다고 해서 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영화 역시 그들의 가치가 세상의 기준으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다고 해서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비광' 스틸컷(사진출처=㈜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결국 '비광'이 이야기하는 것은 추락한 사람들의 삶과 그 안에서 다시 발견하는 희망이다. 화려했던 삶에서 밀려난 사람, 힘이 없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람, 상처 때문에 자신의 감정조차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이 서로를 통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간다. 그래서 '비광'은 불편하고 짠하지만, 그 끝에는 묘하게 따뜻한 빛을 남기는 영화다.

9월 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