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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정원섭, 비행기 태우기 고문→파출소장 딸 피살사건 조작 피해…'7번방의 선물' 실화 주인공
입력 2021-04-29 23:04    수정 2021-04-29 23:10

▲꼬꼬무 시즌2(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영화 '7번방의 선물' 실화 주인공이자 비행기 태우기 고문 등으로 49년 인생이 뒤바뀐 남자, 故정원섭 씨의 이야기를 전했다.

2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조작된 살인의 밤, 연필과 빗 그리고 야간비행'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장항준, 장성규, 장도연은 이야기 친구들에게 1972년 9월 28일, 평화롭던 춘천의 한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고 말했다. 지난밤, 만화를 보러 간다며 집을 나선 초등학교 5학년 윤소미(가명) 양이 논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신원 확인 결과, 피해자는 관내 파출소장의 딸이었다. 당시 김현옥 내무부장관은 겁도 없이 경찰 가족을 건드린 범인을 열흘 안에 잡으라고 했다. 경찰은 동네 남자란 남자들을 모조리 연행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소미(가명)양의 집과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39세 정원섭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흘 뒤,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범인은 바로 만화방 주인, 정원섭 씨였다. 목격자와 관련자의 증언이 쏟아지고 모든 증거는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의 10살 아들, 재호의 증언이었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연필이 바로 재호의 아버지 정 씨가 쓰던 연필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정 씨가 그동안 만 14살, 17살의 만화방 여종업원들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왔다는 것이다. 정 씨의 가족은 ‘강간살인범, 성폭행범의 아내, 자식들’이란 마을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야반도주하듯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가족의 일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 재판을 앞두고 정 씨가 돌연 모든 범행을 부인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그렇다면 그는 왜 살인을 자백했던 것인지 '그날'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했다.

정원섭 씨는 재판 내내 무고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무기징역이었다. 그 무렵, 절망한 정 씨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바로 변호사였다. 그것도 법조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부장 판사 출신의 이범렬 변호사다. 우연히 그의 사연을 듣고 딱한 마음에 찾아왔다는 이 변호사에게 정 씨가 털어놓은 ‘자백의 이유’는 충격적이었다.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경찰의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던 정 씨는 다음 날, 경찰로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가야겠네." 그런데 제주도 야간비행은 바로 고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팔과 다리를 쇠파이프에 묶은 뒤 책상 사이에 걸어 공중에 매달고, 얼굴에 수건을 덮은 뒤 물을 부으며 자백을 강요한 것이다. 정 씨는 사흘 만에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경찰과 검찰은 그를 범인으로 조작했고, 정원섭은 허위 자백을 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지시로 범인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는 15년 복역 끝에 모범수로 1987년 가석방됐다. 정 씨는 1988년부터 신학 공부를 해 목회자가 됐고, 한 맺힌 억울함을 풀기 위해 수차례 재심을 청구했다.

2005년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2007년 재심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그 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재판에서 정 씨는 당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핵심 증거 날조, 증인 조작 등의 진상이 드러났다. 정 씨의 이야기는 영화 '7번방의 선물'로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