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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무례한 동료들의 질문. 이는 영화 '미키17'에서 '미키'의 처지를 상징한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복적으로 죽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익스펜더블'(소모품) 미키의 죽음이 진짜 아무 의미 없는 것인지 묻는다. 그는 '미키17'을 통해 생명의 가치, 노동의 소모성, 그리고 인간성을 박탈당한 사회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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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미키17'로 돌아왔다. 그것도 SF라는 새로운 외피를 두른 채 말이다. '미키17'은 봉준호라는 브랜드에 대한 전 세계적 기대와 관심이 쏠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봉준호의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봉준호가 가장 잘하는 것을 헐리우드 스타일로 정리한 영화다. 미국에서 구한 재료로 김치를 담근 느낌이다.
'미키17'은 근 미래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린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얼음행성 니플하임을 개척하러 떠나는 탐사단에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익스펜더블은 죽을 때마다 다시 프린트(복제)돼 살아나는 복제 인간으로, 위험한 임무를 전담하며 죽어도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탐사단의 소모품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사건은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18'이 프린트된 것이다. 두 명의 미키, '멀티플'이 생겨난 것이다. 하나의 행성에 같은 존재가 두 명이 되면서, 미키는 자신의 정체성과 생존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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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가 가장 잘하는 것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 '옥자'를 통해 이미 영어 영화를 소화한 바 있다. 두 작품과 '미키17'이 다른 것은 할리우드의 제작사 워너브라더스가 제작비 1억 1800만 달러, 한화 약 1700억 원을 투자해 만든 할리우드 영화란 점이다.
처음 할리우드와 손을 잡았다고 해서, 봉준호 감독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미키17'에는 한국 관객들은 이미 익숙한 봉준호식 풍자와 계급 갈등, 인간의 본성이 우주 개척이라는 배경에 녹아있다.
'미키17'에선 '설국열차'의 계급 갈등이 보이고, '기생충' 속 생존 본능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옥자'에서 보여줬던 인간이 비인간을 대하는 태도, 인간의 우월주의를 느낄 수 있다.
'미키17'은 봉준호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할리우드에서 풀어낸 영화다. '봉준호 스타일'은 할리우드에서도 인정하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 로버트 패틴슨, 1인 2역의 묘미
이번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로버트 패틴슨이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더 배트맨'의 다크 히어로를 거쳐, 이번엔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자 동시에 불량 복제된 또 다른 자신을 연기한다. 그는 순종적이고 나약한 '미키 17'과 저돌적이고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 '미키 18'을 표현한다. 단순한 연기 변주가 아니라, 표정과 대사 톤의 미묘한 차이만으로 완전히 다른 두 인물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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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러팔로가 연기한 독재자 케네스 마셜은 기존 할리우드 빌런과는 결이 다르다. 폭군이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진지한 듯 우스꽝스럽다. 관객들의 국적에 따라 생각나는 현실 인물이 있을 수도 있겠다.
토니 콜렛이 연기한 그의 아내 일파는 마셜보다 더 극단적이다. 마셜을 뒤에서 조종하는 실세이며, 계급 구조 속에서 잔인한 결정도 서슴없이 내린다.
하지만 이들은 '설국열차'의 윌포드(에드 해리스), '옥자'의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새로움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봉준호 스타일'의 반복은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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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다운 영화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설국열차'의 파국, '기생충'의 처절한 현실과 달리,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런 희망 가득한 결말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SF 영화를 기대한 관객도 아쉬움을 표할 수 있다. 원작 소설보다도 줄어든 미키의 내면 독백은 이야기의 흐름을 단순화하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키 17'은 봉준호다운 영화다. 계급과 시스템을 향한 비판, 기묘한 유머,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SF라는 장르적 실험까지 더해졌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로 우리에게 또 한 번 질문한다. 문명의 발전과 인간의 존엄, 시스템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은 어떻게 인간다울 수 있을까?
28일 한국 개봉. 러닝타임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