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방송되는 EBS1 '건축탐구 집'에서는 부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특별한 집을 탐구한다.
◆시골집 마니아 남편의 다주택
경기도 여주, 한마당에 집도 여러 채, 담도 여러 개인 집을 찾아라. 돌담부터 시작해 철담, 벽돌담까지, 거기에 독특한 대문까지 건축주 남편은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옛 것의 향기가 물씬 나는 대문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집을 고치기 시작한 이후 화려한 민트색으로 대문을 칠해버렸다. 무너져가던 폐가 흙집이 건축주 부부를 만난 뒤로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건축주의 정체는 바로 전직 유명 브랜드 VMD(시각적 상품화 기획자) 출신이었던 아내 권진아 씨와 포토 그래퍼였던 남편 김재훈 씨다. 도시를 떠나본 적 없던 부부였지만 남편 김재훈 씨의 유별난 시골 사랑에 온갖 매물을 수소문한 아내 권진아 씨. 당시 일본에서 가방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 김재훈 씨가 제시한 시골집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미음(ㅁ)자 집일 것, 두 번째 창고가 딸려있을 것이었다. 마침내 그의 조건에 걸맞은 집을 찾아낸 아내 권진아 씨. 아내가 보낸 집 사진만으로 타국에서 집 매매를 결정할 정도였다.
남편 김재훈 씨는 귀국 후 폐가로 방치된 집을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바꾸기 시작했다. 건축주 부부는 시골집 느낌을 원했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문제에 부딪히며 ㄱ자 본채는 신축으로 진행했다. 이후 시골집에 대한 한이라도 풀고 자 부부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통해 ㄴ자 행랑채를 고쳤고 남은 고재로 케빈 하우스를 만들었다. 원래 있던 우사는 오픈주방으로, 창고는 부부의 작업실로 재탄생시켰다.
인터넷으로 인연이 된 집짓기 전문 유튜버와 고친 행랑채는 시골집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벽을 털어내 안은 나무로 미장한 후 중간은 단열재, 밖은 황토를 발라 마무리하였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서까래만큼은 남겨놓았다. 또한 방 하나는 전기 판넬과 황토 타일을 이용해 현대식 황토방을 만들어냈다. 또한 행랑채를 수리하며 버려진 고재들을 사용해 아들을 위한 A형 캐빈 하우스도 지었다.
젊은 시절, 남편 김재훈 씨는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는데, 그곳에서 본 오픈형 바가 인상에 남았던 남편 김재훈 씨는 자신의 로망이 담긴 오픈키친 또한 마당 한구석에 만들었다. 아내의 로망이 담긴 곳은 집 옆에 있는 작업 공간이다. 반 원형 창에 영국에서 온 문, 샹들리에까지, 구석구석마다 색다르게 꾸며진 아내의 작업실은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유럽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집을 고쳐 산지 5년이라는 세월동안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부부의 취향이 담긴 집이 탄생하였다. 도시에서는 스트레스에 취약했고 예민함을 달고 살았지만 이 집에 와서는 점점 안정적인 삶을 사는 남편 김재훈 씨. 집을 고치느라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재훈 씨지만 환갑을 앞둔 나이에 행복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경상북도 문경, 집짓기에 중독이 된 사람이 있다. 집이 여러 채 있는 넓은 마당에 거주하는 건축주는 단 한 부부 뿐이다. 건축주의 정체는 바로 젊은 시절 707 특임대 출신이었던 남편 양용주 씨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아내 이성수 씨다.
그들이 넓은 마당에 지은 집은 자그마치 7채이다. 그중 가장 먼저 지은 1호집은 현재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유령의 집이지만 한때 거창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짓게 된 실험 집이다. 당시 저에너지 주택에 빠져있는 용주 씨는 바닥 난방 없이 난로 하나로 버틸 수 있게 집을 지었다. 사실 그가 문경까지 와서 이렇게 많은 집을 짓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100평집에 기사까지 딸린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용주 씨. 용주 씨의 아버지는 홀로 지은 여관을 시작으로 점차 건축 사업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IMF로 인해 100평 집에서 작은 쪽방으로 가족 모두 이사를 가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어린 용주 씨가 본 건설회사 사장이었던 아버지가 벽에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던 모습. 그 잔상이 오랫동안 용주 씨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제대 후 아버지와 같은 건축의 길을 걷게 된 용주 씨. 수주 받은 프로젝트를 이행하던 중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화재 복구를 하며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용주 씨는 도시를 떠나 문경으로 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에게 집 짓는 일은 상처받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것. 그렇게 15년이 넘게 지은 집의 개수만 7채가 넘는다.
특히 현재 다목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는 80평 집은 가족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지은 집이다. 하지만 남편 용주 씨는 홀로 짓는 도중 벽체를 세우다 그 밑에 깔려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결국 아내 성수 씨가 1년 휴직까지 해 집짓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후 재활치료를 해야 했지만 용주 씨는 복대까지 차고 10평 온실을 지었다. 특이한 흙바닥 온실은 현재 병아리 부화장과 모종을 싹틔우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용주 씨의 정원 또한 무언가 특별하다. 용주 씨는 친구네 농장 일을 돕다가 우연히 퍼머컬쳐 기법을 알게 되었다. 용주 씨는 퍼머컬쳐 기법을 사용해 서로 다른 식물이 자연 그대로 공생하며 살 수 있도록 정원을 조성하였다. 그로 인해 용주 씨의 정원은 한 공간에 단일 품종만이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닌 여러 식물이 자라고 있다.
707 특임대부터 잘 나가는 인테리어 회사의 대표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 없었던 용주 씨의 젊은 날.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졌던 때 선택한 문경행은 용주 씨에게 새 삶을 살게 해주었다.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하던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꼬마 용주 씨는 어느새 집 7채를 홀로 뚝딱 짓는 어른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