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내 이름은'의 정순은 과거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기억을 잃었지만 과거를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염혜란이 이 역할에 더 끌린 것도 그 지점이었다. 과거를 붙들고 사는 인물보다 정순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극중 아들과의 관계 역시 흔한 모자 서사와는 결이 달랐다. 홀로 아들을 키우지만 자식에게 올인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너는 네 생활, 나는 내 생활'이라는 쿨함을 가진 인물이었다.
"극중 아들과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만 친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과 얘기했어요. 진짜 가족같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애드리브도 많이 만들었죠. 하하"

영화 마지막에는 염혜란이 직접 부른 故김민기의 '친구'가 흘러나온다. 처음엔 완강히 가창을 거절했다. 너무나 유명한 곡인 데다 김민기의 깊이를 따라 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김민기 유족의 허락을 받아 영화에 삽입됐다.
"녹음 당일 멋을 부리지 않기로 했어요. 최대한 담백하게 마음을 내려놓고 부르는 것이 전부였죠. 들으면 들을수록 '친구'의 가사가 우리 영화와 잘 어울리더라고요. 감독님의 생각이 역시 맞았어요."

염혜란은 '폭싹 속았수다' 이후 따라붙은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엄마라는 존재가 모두에게 애틋한 기억만은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상처를 자극할 수 있는 타이틀로 상징화되는 건 바라지 않아요. 저는 뻔한 엄마가 아닌 더 다양한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 번쯤 지독하게 이기적인 엄마를 연기하는 상상을 해봐요."

출연작들이 잇따라 주목받고 있지만 염혜란은 '전성기'라는 칭찬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정말 힘든 시간이 왔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때가 진짜였구나' 싶을 것 같단다.
"인기보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 배우의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는 그 복을 한껏 누리는 중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