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영화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그것도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불러냈다.
영화 '호프'는 통신이 두절된 외딴 마을 호포항의 사람들이 외계 존재의 습격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산불 진압으로 지원 인력은 없으며 마을에는 출장소 경찰 두 명과 노인들만 남았다. 청년들은 놈들을 쫓아 산으로 향했다가 되려 사냥감이 되었다. 끊임없이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156분 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틈을 주지 않는다.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참신하다. 외계인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쌓아 올리는 긴장감이 특히나 탁월하다. 형체조차 가늠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가 극의 초반부를 가장 강렬한 구간으로 만들어낸다. '진격의 거인'을 연상케 하는 거대 외계인과 변신하는 외계인의 등장은 박진감을 배가시키고 중간중간 터지는 유머 코드는 관객을 함께 웃게 만들며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켜 준다. 극장에서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야기의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다. 외계인의 근원이 무엇인지, 왜 이 마을에 나타났는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영화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156분의 시간이 무색하게 명쾌하게 풀리는 궁금증이 없다. 칸 기자회견에서 나홍진 감독이 "이번 한 편 자체로도 완결성이 있다"라고 밝힌 만큼 이 불친절함은 의도된 선택이다. 그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느냐를 가른다.
배우들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황정민이 연기한 경찰 범석은 초반부터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이다. 외계인과 맞닥뜨린 인간의 혼란과 본능적인 사투를 온몸으로 밀어붙인다. 그의 연기는 실제로 저런 상황에 닥치면 저렇게 행동하겠다 싶은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정호연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는 호포항 출장소 순경 성애로 등장해 경찰차를 몰고 군용 소총을 능숙하게 다룬다. 그 모습은 시골의 여성 경찰이라는 설정과 묘하게 대비된다. '오징어게임', '닭강정' 등 시리즈물에서 존재감을 뽐냈던 것처럼 '호프'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임을 증명한다.

조인성이 맡은 사냥꾼 성기는 다소 난해한 캐릭터다. 죽지 않는 듯한 기묘한 인물이며 범석과의 관계가 흥미롭게 설정되어 있으나 그의 실체는 영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이 연기하는 외계인들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나 물음표로 끝나는 캐릭터들이다.

외계인 소재라는 신선한 도전,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 배우들의 열연이 시너지를 이루며 '보는 재미'는 확실하게 보장한다. 그러나 '빌드업' 없이 관객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방식은 일부 관객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몸으로 즐기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럽고, 이야기의 맥락을 따져가며 보는 관객이라면 물음표만 가득 안고 극장을 떠날 것이다.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56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