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거대한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 '오디세이'는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거대한 폭풍과 괴물, 신들의 시련을 헤쳐나가는 여정을 그린다. 원작과 차이를 보이는 설정도 있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몰입감을 해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놀란 감독특유의 방식으로 재해석된 장면들이 원작과는 또 다른 영화적 재미를 완성한다.
17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도 체감하기 어려울 만큼 흡인력이 뛰어나다. 놀란 감독은 두 개의 서사를 동시에 끌고 가는 방식을 택했다. 오디세우스와 바다의 여신 칼립소(샤를리즈 테론 분)의 이야기,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면서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두 축이 겹치고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몰입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맷 데이먼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인터스텔라', '마션'에 이어 또 한 번 귀향을 향한 여정을 그리는 인물을 맡았다. 어쩌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강렬한 포스, 병사들을 이끄는 지략가의 면모, 귀향을 갈망하는 인간의 절박함까지 능숙하게 오가며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앤 해서웨이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이자 구혼자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는 왕비 페넬로페로서 중심을 잡아낸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여인이 아니라 왕국을 지켜내려는 한 사람의 의지가 그의 눈빛에 고스란히 담겼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 이어 다시 한번 강단 있는 여성상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톰 홀랜드는 그동안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성장한 남자의 무게를 보여준다.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텔레마코스의 불안과 결기를 동시에 담아내며 스파이더맨의 잔상을 완전히 걷어낸다. 이번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톰 홀랜드는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로 관객들을 먼저 만난 뒤 일주일 만에 '오디세이'로 극장가에 돌아온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와 고대 영웅 텔레마코스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이어 선보이면서도 이미지가 겹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 톰 홀랜드의 한층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하게 만든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이타카의 구혼자 안티노오스는 이 영화의 인상적인 악역이다. 비열하고 교활한 계략을 능청스럽게 그려내며 관객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샤를리즈 테론의 칼립소는 매혹적이고, 서맨사 모턴의 마법사 키르케는 소름 끼치는 마녀의 기운을 풍긴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 역의 젠데이아와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 역의 루피타 뇽오는 기존 신화 이미지와는 다른 캐스팅을 보여준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영화가 구축한 세계관 안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수많은 명배우들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엮은 놀란의 연출은 이번에도 건재하다. 신화 속 영웅담을 단순한 고전의 재현이 아닌 현대적인 스펙터클과 인간 드라마로 완성해낸 점은 감탄을 자아낸다. 3000년 전의 이야기가 172분 동안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디세이'는 극장에서 경험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8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72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