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엔 가끔, 임상춘 작가님 시점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마치고 만난 아이유는 웃으면서 "아직도 이번 작품에 과몰입해 있다"라며 "'폭싹 속았수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심지어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의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최종회가 공개된 지금까지도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와 인물들에게 푹 빠져있다고 했다. 그는 "작품 속 인물들을 오래도록 품고 지낸 지난 시간들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오애순(아이유, 문소리)과 '팔불출 무쇠' 양관식(박보검, 박해준)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다. 아이유는 이 작품에서 단단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 애순과 애순의 딸 금명의 수십 년 인생을 그렸다. 어머니와 딸, 세대도 감정도 전혀 다른 두 인물을 오가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아이유는 깊이 있게 극을 이끌었다.

"애순과 금명이 두 캐릭터를 품고 연기했던 시간이 '아이유' 이지은을 조금 바꾼 것 같아요. 전에는 인생을 좀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면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선 조금 더 낙관적으로 변했어요."
아이유는 '폭싹 속았수다' 대본을 처음 읽은 순간부터 확신이 있었다. 그냥 느낌이 왔단다. 아이유는 작품 제작이 확정되기도 전에 출연하겠다고 먼저 의사를 전했다.
"대본을 보는데 진짜 찌릿하더라고요. 이건 내가 꼭 해야겠다 싶었어요. 작품이 시작된다면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고 어느 시점에든 참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두 인물은 아이유가 지금까지 연기한 어떤 캐릭터보다 낯설고 복합적이었다. 애순과 금명, 두 인물 모두 워낙 밀도 있고 감정선도 미묘했기 때문에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애순은 아이유에게 유난히 오래 남은 인물이다.
"애순은 말이 적고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에요. 하지만 마음속으론 누구보다 큰일을 겪고 있죠. 처음엔 좀 멀게 느껴졌는데 연기를 할수록 침묵 안에 있는 감정이 더 크게 와 닿더라고요."
반면 금명은 감정이 격렬하고 표현도 분명한 인물이었다.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감정에 앞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막 터져 나왔다. 하지만 외롭고 어린 마음이 인물 안에 있었기에 아이유는 균형 있게 두 가지 면모를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애순과 금명은 아이유의 연기 방식도 변하게 했다. 아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연기를 준비하는 속도가 느려졌다고 설명했다.
"예전엔 빠르게 분석해서 감정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감정을 연기해야 할지 알면, 빨리 준비해서 보여줘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캐릭터를 오래 지켜보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감정이 오면 받아들이는 쪽으로요. 그게 더 자연스럽고 제 스타일에도 맞는 것 같아요."

'폭싹 속았수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애순과 관식의 인생을 그렸다. 하지만 촬영은 순차적이지 않았다. 연기 경험이 꽤 쌓인 아이유에게도 꽤 강도 높은 촬영이었다.
"아침엔 금명이었는데 오후엔 애순이가 되는 날도 있었어요. 감정이 너무 다른 인물들인데, 그 온도를 금세 바꿔야 했죠. 가끔은 내가 엄마인지 딸인지 헷갈리더라고요. 하하. 그런데 애순이도, 금명이도 너무 좋아요. 나중엔 정말 가족처럼 느껴졌어요."

'폭삭 속았수다'의 촬영이 끝난 지 1년이 지났고 마지막 16화까지 공개됐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아이유의 감정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는 지금도 가끔 작품 속 인물들이 쓰던 말투, 시선, 생각의 방식이 문득문득 떠오른다고 했다. 두 인물의 삶을 품고 그들의 가족과 함께 살며 많은 감정을 겪으면서 아이유의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고, 시선은 좀 더 따뜻해졌다.
"'폭싹 속았수다'는 격정적으로 기억에 남는다기보다는 조용히, 깊게 남아요. 연기하면서 쌓은 감정들이 그대로 마음 한쪽에 가라앉더라고요. 임상춘 작가님처럼 인생을 보는 게 어색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가끔은 '관식이 정신'으로 한 번 살아볼까? 이런 생각을 한다니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