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에 촬영을 했다 보니 본방을 봐도 내용이 가물가물하더라고요. 저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언슬전'에 빠져들었어요. 하하."
지난 18일 종영한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은 지난해 봄 촬영을 마쳤지만, '전공의 파업'이라는 변수에 가로막혀 1년 가까이 방영이 연기됐다. 시청자는 물론 배우 고윤정도 처음 겪는 낯선 공백이었다. 2023년 12월 공개된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이후 2024년 12월 디즈니플러스 '조명가게'에 깜짝 등장하기 전까지 고윤정은 계획에 없었던 공백기를 갖게 됐다.
기다리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언슬전'은 1회 3.7%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해 최종회인 12회에서 8.1%를 기록, 최고 수치로 종영했다. 그 중심에는 오이영으로 살았던 고윤정이 있었다.

'언슬전'은 tvN의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로,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1년 차 전공의들의 서툰 시작을 담았다. 고윤정이 연기한 오이영은 빚 때문에 전공의가 된 인물이다. 학문에 대한 열정, 의사로서의 소명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윤정은 시청자들이 오이영이란 인물에 공감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점점 연기할수록 오이영이라는 인물을 알겠더라고요. 저도 오이영처럼 어떤 것에 진심을 쏟으려면 확실한 계기와 동기가 필요하거든요."

뭔가에 꽂히면 앞뒤 안 보고 몰입하는 성격, 질문을 던지기보단 한참을 바라보며 상황을 익히는 습관, 어떤 관계든 정이 들면 더 깊어지는 사람이 오이영이자 고윤정이었다. 고윤정은 '언슬전'에 몰입하며 오이영의 세계를 받아들였고, 오이영을 연기하며 자기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저도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일에 대한 의욕이 별로 없었어요. 사회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그저 맡은 일만 잘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작품을 하면 할수록 제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변화가 오이영이라는 캐릭터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극 초반 무표정하고 차가웠던 고이영은 동료, 환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웃음을 배웠고, 공감과 위로를 나누게 됐다.

특히 오이영과 구도원의 관계는 예상하지 못했던 설렘을 안겨줬다. 고윤정은 '오구 커플'의 명장면으로 6화 놀이터 벤치 신을 언급했다. 말없이 이어지던 침묵 끝 시선이 마주쳤고, 그 짧은 눈 맞춤 속에서 오이영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해 질 무렵이었고, 바람도 솔솔 부는 완벽한 날씨였어요. 준원 오빠의 훈훈한 연기까지 더해져서, 저도 진심으로 설렜어요."
그런데 고윤정은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오이영과 구도원의 로맨스가 이렇게 큰 반응을 얻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배우들 단톡방에서 '준원 오빠, 슈퍼스타 된 기분이 어때?'라고 농담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고윤정의 눈빛에는 '언슬전'이라는 추억을 함께 쌓아 올린 동료에 대한 애정이 깊게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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