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고윤정은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언슬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이 생겼다. 슬기로운 배우란, 단지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는 공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촬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대사보다 '공기의 온도'를 먼저 느끼게 되더라고요."
고윤정이 말하는 '공기의 온도'는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 그 장면을 만드는 스태프들, 그리고 맡은 인물로 살아가는 자신이 쌓아 올린 감정의 밀도였다. 그는 그것이 연기에도 다 스며든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촬영하며 알았다고 했다.
고윤정에게 '공기의 온도'가 충분히 따뜻했던 현장이었다. 하지만 훈훈한 현장의 공기 속에서 고윤정은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마주했다.

"전작들이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특히 '무빙' 이후로 대중의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걸 알게 됐고, 실망하게 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부담을 의식하기보단 눈앞의 장면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오이영처럼요."
고윤정은 '언슬전' 엔딩크레딧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고윤정이라는 배우가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윤정은 자신을 '전공의 1년 차 11월쯤의 배우'라고 표현했다.
"배우로서 익숙해진 것도 많지만, 여전히 현장에 오면 긴장돼요. 막연했던 연기에 대한 고민들이 구체적인 질문이 돼 돌아오는 시기 같기도 하고요. 또 이전보다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고요."

이전까지는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후배 배우였지만, 이젠 누군가를 살펴주는 위치가 됐다. 특히 신시아, 한예지 같은 또래 동료들과의 호흡은 그에게 또 다른 성장을 안겼다.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에요. 그들과 같이 있으면 '좋은 선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로스쿨' 때 김범, 류혜영 선배가 절 그렇게 챙겨주셨던 것처럼요."
선배들의 따뜻함은 정경호, 안은진, 김준한 등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특별 출연 현장에서도 느꼈다. 고윤정은 선배들이 대사보다 현장의 공기를 바꾸는 모습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단단한 연기력은 물론, 후배 앞에서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빠르게 현장의 분위기를 이끄는 태도는 고윤정이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촬영이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고윤정은 여전히 오이영의 마음 일부를 품고 있다. 사람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됐고, 동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도 알게 됐다. 또 자신을 더 자주 돌아보게 됐다.
"연기하면 할수록,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져요.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제 모습이 나올지, 어떤 감정이 남을지… 그게 요즘 가장 설레는 부분이에요."